기원정사에서 전해진 또 다른 위선자에 관한 액자 이야기
악기카 자타카는 이 이야기 속 자칼에게 특징적인 볏을 남긴 불을 그 이름에 떠올리게 하며, 빨리 성전에 실린 부처님 본생담 가운데 제129번째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기원정사에서, 이 이야기 속 자칼이 한때 그랬던 것처럼 경건한 겉모습 뒤에 이기적인 목적을 숨겼던 한 비구에 관하여 전해졌다.
숲불에 갇힌 자칼
먼 옛날, 브라흐마닷타가 바라나시를 다스리던 때, 보살은 쥐들의 왕으로 태어나 신하들과 함께 숲속 동굴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계절 숲에 들불이 번졌고, 그 불길 속에 갇힌 자칼 한 마리는 불길을 피하려고 머리를 나무 밑동에 바짝 붙였다. 불이 지나갔을 때 그의 몸의 털은 모두 타 버렸고, 머리 꼭대기에 한 줌의 털만 곧게 서 있었다.
새로운 생계를 떠올리게 한 물그림자
그 뒤 자칼은 물을 마시러 연못으로 가다가 자기 모습이 물에 비친 것을 보았고, 불이 남긴 기이한 볏을 알아차렸다. 그는 그것을 단순한 불운으로만 여기지 않고, 마침내 자신의 불운으로 생계를 꾸릴 길을 찾았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쥐들이 사는 동굴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동굴 입구에서 내세운 이름과 약속
쥐들의 동굴 앞에서 자칼은 자신을 불의 신을 섬기는 헌신자 바라드바자라고 소개하고, 기도하듯 태양을 향해 한 발로 섰다. 쥐들의 왕이 밖으로 나와 그가 누구이며 왜 왔는지 묻자, 자칼은 자신이 내세우는 헌신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한 가지 봉사를 제안했다. 매일 아침 쥐들이 먹이를 찾으러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올 때 동굴 입구에서 지키며 그들을 세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어느 쥐도 포식자에게 눈에 띄지 않게 잃어버리는 일이 없으리라고.
낯선 이의 주장에 아낌없이 주어진 신뢰
자칼의 경건한 태도와 그 제안의 그럴듯한 쓸모에 설득된 쥐들의 왕은 그를 무리의 수호자로 받아들였다. 그 뒤로 아침마다 저녁마다 쥐들은 한 줄로 자칼 곁을 지나갔고, 그는 약속한 대로 “하나, 둘, 셋” 하며 큰 소리로 세었다.
정직해 보이는 셈 속에 숨은 도둑질
쥐들이 볼 수 없었던 것은, 자칼이 셈이 끝나는 바로 그 순간 줄의 맨 마지막 쥐를 언제나 붙잡아 삼켜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자기 목소리가 마지막 수에 이르는 바로 그 순간에 물도록 시간을 맞추어, 침묵이 자신이 저지른 일의 소리를 덮어 버리게 했다. 밤마다 아침마다 무리의 수는 하나씩 줄어들었지만, 어느 쥐도 그 패턴을 충분히 목격하여 경보를 울릴 만큼 보지는 못했다.
신하들이 놓친 것을 알아챈 왕
시간이 흐르자 쥐들의 왕은, 외부의 위험이 전해진 것도 없는데 백성이 줄어들고 있음을 알아차렸고, 전보다 더 세심하게 자칼의 셈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어느 저녁 그는 줄에서 떨어져 서서, 셈이 끝에 이르는 것을 자세히 지켜보았고, 자칼의 턱이 그의 목소리가 그치는 바로 그 순간 마지막 쥐 위로 닫히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평범한 관찰에 기초한 대면
고발도 분노도 없이, 쥐들의 왕은 그 뒤 자칼에게 다가가 자기가 본 것을 곧바로 말했다. 자칼의 머리를 그 불에 그을린 털 뭉치로 장식한 것은 성스러움이 아니라 탐욕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자칼이 거룩함의 표지로 달고 다니던 볏은, 탐욕이 이익으로 바꾸어 놓은 사고의 흔적일 뿐이었다.
진실을 분명히 말한 한 편의 게송
쥐들의 왕은 모인 무리 앞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 자칼에게 볏을 준 것은 덕이 아니라 탐욕이었다. 태양 앞에서 한 발로 서는 일을 아무리 되풀이해도, 그의 식욕이 이미 드러낸 그의 참모습은 바뀌지 않았다.
자칼의 장사를 끝낸 폭로
눈에 띄지 않고 활동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위장을 벗겨 내자, 자칼은 하나씩 빼앗아 온 쥐들과 마주하기보다 동굴 입구에서 달아났다. 거짓 수호자가 문 앞에 서 있는 일 없이, 무리는 평소의 경계심으로 돌아갔다.
부처님의 신원 확인
이야기를 마친 부처님은 등장인물이 누구였는지 밝히셨다. 기원정사의 위선적인 비구는 전생의 그 자칼이었고, 부처님 자신은 마침내 그를 꿰뚫어 본 쥐들의 왕이었다.
하나의 영리한 술책을 넘어 살아남은 가르침
이 이야기가 기원정사에서 듣는 이들에게 준 것은, 단지 고행자의 모습을 한 자칼에 대한 경고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영리한 계략이든 결국 자신이 빚어낸 결과를 통해 스스로를 배신하게 된다는 것을, 매일의 셈처럼 평범하고 안심이 되는 것 속에 아무리 잘 숨어 있더라도 그렇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가장 소박한 지혜의 형태는 흔히 경건한 겉모습을 경건한 마음의 증거로 받아들이는 대신,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알아채고 그 까닭을 묻는 것이다.
알고 계셨나요?
본생경 제129화. 탐욕은 겉보기에 정직한 일상 속에 숨어 있어도 결국 스스로를 드러낸다는 것을 보여 준다.
불에 그을린 자칼이 바라드바자라 자처하며 불의 신을 섬기는 자인 척하여, 쥐 무리 전체의 신뢰를 얻는다.
자칼의 죄는 매일 되풀이되는 셈이라는 의식 속에 숨어 있으며, 그는 매번의 도둑질을 셈이 끝나는 순간에 맞춘다.
보살은 쥐들의 왕으로 나타나고, 그의 인내 어린 관찰은 기만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대면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눈에 띄는 외적 경건의 표지라 할지라도, 존재의 실제 행실을 시험하는 일을 결코 대신할 수 없음을 확언한다.
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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