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arat Devotion
Embroidered artwork for 빌라라 자타카: 위선적인 자칼과 쥐들의 왕: Embroidered Buddha seated in meditation on a pink lotus, with a golden dharma wheel and a white stupa in the mountains

빌라라 자타카

위선적인 자칼과 쥐들의 왕

자칼 한 마리가 개미 언덕 위에서 성자인 척하며 쥐들을 하나씩 잡아먹다가, 쥐들의 왕인 보살에게 시험을 받고 기만이 드러나는 이야기(제128화).

덕행을 가면으로 쓴 비구

부처님께서 제타바나 수도원에 계실 때, 겉으로는 지극히 위의를 갖춘 수행자인 척하면서 속으로는 탐욕과 기만을 일삼던 비구를 위해 이 본생담(제128화)을 설하셨습니다. 그 비구는 눈을 내리깔고, 걸음걸이는 조심스럽고, 말은 조용했으나, 이 신중한 모습 뒤에서는 몰래 탐욕과 속임수를 쫓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중에게, 해를 감추기 위해 성스러운 외양을 걸친 그러한 형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위장이 과거에 어떻게 작동했고 마침내 어떻게 간파되었는지를 분명히 보여 주기 위해, 바라나시 숲에 전해지는 옛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숲의 쥐왕

아주 오래 전, 브라흐마닷타왕이 바라나시를 다스리던 때에 보살은 쥐로 태어났습니다. 그 몸집은 어린 멧돼지만큼 컸고, 같은 무리 가운데서도 유난히 지혜로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는 수백 마리 쥐로 이루어진 큰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고요한 숲 한편의 굴에서 함께 살며 매일 안전하고 질서 있게 먹이를 구했습니다.

자칼의 계략

떠돌아다니던 자칼 한 마리가 이 번성한 쥐 무리를 발견하고, 어떻게 그들을 속여 잡아먹을지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면으로 공격하면 쥐들이 굴속으로 흩어져 버리고 자신만 굶주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그는 곧바로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 교묘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쥐들이 달아나지 않고 스스로 다가오도록, 자신을 아주 거룩해 보이게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담미카라 불리는 성자

자칼은 근처의 개미 언덕에 올라가 떠오르는 해를 마주 보고, 입을 벌린 채 한 다리로 꼼짝 않고 섰습니다. 오직 공기만 들이마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쥐들이 호기심을 품고 다가오자, 그는 자신의 이름이 담미카, 곧 법을 지키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한 다리로 서 있는 까닭은, 쌓아 온 공덕의 무게를 대지가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해를 향해 공경의 뜻으로 얼굴을 돌리고, 공기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어떤 생명에게도 해를 끼치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개미 언덕에서 날마다 받는 예배

이 드러난 거룩함에 감복한 쥐 무리는 먹이를 찾아 나갈 때마다, 아침과 저녁으로 그의 개미 언덕 곁을 지나며 자칼에게 예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보살 자신도 이러한 경건한 예배에서 분명한 잘못을 찾지 못했기에, 이 경건해 보이는 낯선 이에 대한 날마다의 공경을 허락했고, 나아가 격려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행렬 뒤에서 사라지는 쥐들

쥐들이 보지 못한 것은, 그들의 행렬이 개미 언덕을 지나 되돌아갈 때마다 자칼이 행렬의 맨 마지막 쥐를 낚아채 데려가서 몰래 먹어 치운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움직이지 않는 성자의 자세로 돌아갔다는 사실입니다. 밤마다 무리는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줄어들어 갔습니다.

불안한 헤아림

마침내 다른 쥐들이 자신들의 수가 줄어든 것을 알아차리고, 그 걱정을 보살에게 가져갔습니다. 보살은 그들의 행렬이 예전에 얼마나 빽빽했는지, 그리고 그 거룩한 낯선 이가 온 뒤로 얼마나 엉성해졌는지를 되돌아보았습니다. 자칼의 경건함과 무리의 손실이 우연의 일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쥐왕이 성자를 시험하다

사실을 분명히 확인하기 위해, 보살은 저녁 행렬의 맨 뒤를 직접 걷도록 준비했습니다. 바로 사라진 쥐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자리였습니다. 나머지 행렬이 개미 언덕 곁을 무사히 지나가자, 자칼은 전과 같이 손쉬운 먹이를 기대하며 달려들었습니다.

가면이 벗겨지다

보살은 이 공격을 예상하고 이미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공격이 닿기 전에 몸을 날려 피하고, 자칼을 마주 보고 돌아섰습니다. 그는 쥐 무리 전체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이 이른바 성자의 거룩함은 아무 의심 없는 생명을 속이기 위해 걸친 외투일 뿐이며, 그 아래에는 포식자의 참된 본성이 숨어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동작 속에서 쥐왕은 자칼의 목덜미로 뛰어올라 숨통을 물어뜯어, 이 기만을 영원히 끝냈습니다.

고양이 본성의 게송

자칼의 계략을 드러내어 끝맺은 뒤, 보살은 모인 무리에게 게송 하나를 읊었습니다. 그것은 옛 전승이 전하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거룩함이 오직 순진한 이들을 속이고 악인의 배신을 감추는 외투 노릇만 할 때, 그 아래에는 고양이와 같은 본성이 숨어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게송이 이야기 속의 실제 자칼이 아니라 고양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옛 이야기꾼들이 매끄럽게 다듬지 않고 남겨 둔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빌라라 자타카”, 곧 고양이 본성의 탄생 이야기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야기 속에서 사냥꾼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칼입니다.

부처님의 동일시

이야기가 끝나자 부처님께서는, 지금 이 자리의 위선적인 비구를 옛이야기의 자칼과 같다고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무리를 기만에서 안전하게 이끌어 그 기만을 끝낸 지혜로운 쥐왕과 같다고 밝히셨습니다.

개미 언덕을 넘어 이어진 가르침

거짓 성자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뒤, 쥐 무리는 옛날의 안전으로 돌아가 평화롭게 살았고, 더 이상 겉모습만 보고 속지 않게 되었습니다. 빌라라 자타카는 다음과 같은 경고로 남아 있습니다. 한 다리로 서기, 공기만 먹으며 단식하기, 경건해 보이게 해를 향해 얼굴 돌리기 같은 과장된 고행의 연출은, 그 밑에 있는 성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증명해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제128화는 모든 독자에게 쥐왕이 끝내 해낸 일을 하라고 청합니다. 누군가의 경건함을 믿기 전에, 그저 연출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잃어 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라는 것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빌라라 자타카는 팔리 경전에 실린 제128화 본생담입니다.

산문 이야기 속 포식자는 자칼이지만, 제목과 마지막 게송은 고양이와 같은 성품을 말합니다.

자칼은 담미카라는 성자인 척하며 한 발로 서서 해를 향합니다.

쥐들의 왕인 보살은 저녁 행렬의 맨 뒤를 직접 걸어 자칼을 시험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현재의 위선적인 비구를 옛 이야기의 자칼과 같다고 밝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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