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을 앞둔 스승이 슬퍼하는 제자에게 남긴 가르침
부처님이 구시나가라에서 임종의 자리에 누워 계실 때, 시자 아난다는 이십오 년간 한결같이 받든 봉사가 자칫 아무 의미 없이 끝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슬픔에 잠겨 물러났다. 부처님은 그를 다시 불러 어떠한 선행이라도, 아무리 작더라도 결코 헛되지 않음을 말씀하셨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빨리 성전의 본생경 제307화, 팔라사 본생경으로 전해지는 전생의 한 일화를 들려주셨다.
바라나시의 가난한 바라문
바라나시 성에서, 브라흐마닷타 왕이 다스리던 시절, 한 바라문이 너무도 가난하여 이웃들처럼 신들에게 성대한 제사를 올릴 형편이 되지 않았다. 다른 가장들이 번영을 바라며 여러 신을 섬기는 모습을 보고, 그는 자신이 바칠 변변한 물건이 없었지만 자신만의 신을 모시기로 마음먹었다.
팔라사 나무를 향한 날마다의 공경
바라문은 성 밖 높은 땅에 우뚝 선 거대한 팔라사 나무를 찾아내어 그것을 공경의 대상으로 삼았다. 날마다 그는 나무 뿌리 주변의 자갈을 쓸어 정갈히 하고, 땅에 물을 뿌리며, 다섯 송이 꽃으로 엮은 향기로운 화환을 가지에 걸었다. 꽃과 향과 향료를 가져와, 저녁마다 그 아래 등불을 밝히고, 아무것도 구하지 않은 채 가진 모든 것을 바치며 진실된 겸허함으로 나무 앞에 엎드렸다.
노인의 날카로운 물음
그 나무에 머물던 신은 다름 아닌 전생에 부처가 되어 가던 보살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변함없이 바라문이 바치는 정성을 지켜보던 신은 그 속에 깃든 진심을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늙은 바라문의 모습으로 변하여 나타난 신은 날카롭게 물었다. 이성을 갖춘 사람이 어찌 듣지도 못하고 기도에 응답할 수도 없는 무정한 나무 앞에 절하는가?
바라문의 흔들리지 않는 대답
가난한 바라문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오래되고 존귀한 나무에는 흔히 신령이 깃들어 있어, 그것을 공경하는 이를 지켜 준다고 답하였다. 따라서 나무를 한낱 목재로 업신여기기보다는 그러한 수호신을 공경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그의 대답에는 어떤 교묘한 계산도 없었고, 오랜 세월 쌓여 온 정직하고 한결같은 믿음만이 있었다.
나무 신의 현현
이 헌신의 깊이와 한결같음에 감동한 노인 모습의 신은 빌린 모습을 벗고, 찬란한 본래의 모습으로 나무 신이 되어 나타났다. 신은 바라문에게, 보답의 보장도 없이 바쳐진 이처럼 인내하며 원망 없이 올리는 공경은 응답받을 만하며, 말없이 이어 온 긴 세월의 봉사가 열매를 맺을 때가 되었다고 말하였다.
묻혀 있던 보물의 약속
신은 게송으로 말씀하시며, 옛날 제물과 희생을 바치던 곳 가까이에 서 있던 한 무화과나무로 바라문의 주의를 이끌었다. 그 무화과나무 아래에는 오래도록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채 기다려 온 보물이 묻혀 있다고 하였다. 바로 이 숨겨진 재물이 이제 바라문의 굳은 정성에 보답하게 될 것이었다.
수고 없이 주어진 재물
신은 바라문에게 직접 땅을 파서 찾으라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더디고 불확실한 노동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 고생을 그에게서 완전히 덜어 주기로 하였다. 신은 바라문에게 그저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며, 보물이 바라문 자신의 집 안, 그가 쓸 수 있는 곳에 놓여 마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고요한 믿음이 바꾼 삶
바라문은 가르침대로 집으로 돌아갔고, 신이 약속한 그대로 기다리고 있는 보물을 찾았다. 그날부터 그는 궁핍을 벗어나 살 수 있게 되었다. 신은 그에게 이 재물을 지혜롭게 쓰라고 권하였다. 평생 누리고, 아직도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보시하며, 처음부터 그의 신심을 이끌어 온 도덕의 계율을 지키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정체 밝힘
이야기의 마지막에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먼 과거의 이 인물들이 누구였는지를 밝히셨다. 팔라사 나무를 정성껏 받든 가난한 바라문은 바로 전생의 아난다 자신이었고, 그의 공경에 보답한 나무 신은 부처님 자신의 전생인 보살이었다.
임종의 자리를 넘어선 가르침
임종의 마지막 시간에 이 이야기를 들려주심으로써,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그리고 이후의 모든 독자에게 영원한 확신을 주셨다. 불평이나 계산 없이 바친 인내의 봉사는 결코 잃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생경 제307화는 재물 그 자체를 찬탄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지켜 온 진실한 신심이 어떻게 스스로의 과보로 익어 가는지를 보여 준다. 그 과보가 이번 생에 이르든, 아난다의 경우처럼 길고 충실한 봉사가 끝나야 비로소 확인되든 말이다.
알고 계셨나요?
이것은 본생경 제307화인 팔라사 본생경으로, “두 번째”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이름을 지닌 제370화와는 무관하며 구별된다.
부처님은 구시나가라에서 임종을 앞두고 슬퍼하는 아난다를 위로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충실한 봉사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고 확언하셨다.
바라문은 가난 때문에 그 나무를 공경하였다. 부유한 이웃들이 치를 수 있는 값비싼 제사를 올릴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무 신은 회의적인 노바라문의 모습으로 변하여 바라문의 진심을 시험한 뒤에야 참된 모습을 드러내었다.
부처님의 정체 밝힘에 따르면, 가난한 바라문은 아난다 자신이었고, 그에게 보답한 나무 신은 보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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