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흔들린 비구
부처님께서는 팔리 경전에 실린 본생담 제30화인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한 비구가 아름다운 여인을 향한 뜨거운 그리움에 빠져, 그 여인을 위해 출가 수행자의 삶을 버릴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바로 이 여인이 전생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 비구가 지금 까닭 없이 부러워하는 한 생명의 죽음을 불러들였음을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러움이 얼마나 사람을 속일 수 있는지 보여 주기 위해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두 형제 소와 귀염받은 아기 돼지
기름진 농촌 마을에서 보살은 튼튼한 일소로 태어나 '마하 로히타'(큰 붉은 소)라 불렸고, 그에게는 '출라 로히타'(작은 붉은 소)라는 아우가 있었습니다. 두 형제는 주인을 위해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돌이 많은 밭을 쟁기로 갈고, 숲에서 땔나무를 실어 날랐습니다. 그러나 성실한 노동의 대가로 받는 것은 마른 볏짚과 거친 풀뿌리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농부가 '무니카'라는 이름의 작은 새끼 돼지 한 마리를 데려왔습니다. 소들이 놀랍게도, 집안사람들은 돼지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루 세 번 갓 지은 기름진 쌀밥과 진한 죽을 넉넉히 먹이고, 시원한 진흙탕에서 편히 뒹굴도록 두었습니다. 그동안 소들은 날마다 고된 일을 이어 갔습니다.
질투에서 비롯된 불평
출라 로히타는 이 불공평을 날마다 지켜보며 마음이 쓰라려졌습니다. 그는 형에게, 이것이 참으로 가혹하고 불공평해 보인다고 호소했습니다. 두 소는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면서도 얻는 것이라고는 마른 겨뿐인데, 발굽 하나 움직이지 않는 게으른 돼지는 향기로운 음식을 넘치게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마하 로히타는 부드럽게 답하며, 동생이 돼지를 전혀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무니카가 먹는 풍성한 음식은 사실 죽음의 음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마하 로히타는 농부의 딸이 이웃 마을의 젊은이와 혼약을 맺었으며, 그 돼지는 오직 혼례 손님들에게 고기를 대접하기 위해 살이 올려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혼례 잔치
두 주쯤 지나, 마을에 혼례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고 하객들이 명절 차림으로 찾아왔습니다. 농부의 일꾼들이 무니카를 붙잡아 도살하고, 마하 로히타가 미리 말한 그대로 잔칫상에 올릴 고기를 준비했습니다. 형이 무니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제 보았느냐고 묻자, 떨고 있던 출라 로히타는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들이 정직하게 얻어 안전하게 먹는 소박한 마른 볏짚이, 도살을 눈앞에 두고 먹는 가장 호화로운 진미보다 백 배나 더 값지다고 선언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밝히신 인물들
가르침을 마치며 부처님께서는 두 생에 걸친 인물들을 밝히셨습니다. 지금 욕망에 흔들리던 비구는 총애받던 돼지 무니카였고, 그를 유혹한 여인은 두 이야기 모두에서 같은 농부의 딸이었습니다. 아난다는 작은 붉은 소 출라 로히타였고, 부처님 자신은 큰 붉은 소 마하 로히타였습니다. 그 꾸준한 노동과 맑은 안목은, 한때 호의처럼 보였던 사치의 실체를 꿰뚫어 보았던 것입니다.
잘못된 기준으로 잰 질투
이 본생담의 가르침은, 두 소가 자신의 가치를 돼지의 것과 견주면서 오직 하나의 잘못된 기준, 즉 받는 음식이 얼마나 풍성한가에 기대어 재고, 그 풍성함이 실제로 무엇을 사고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불교의 주석 전통은 이를 틀 이야기 속에서 아름다움에 흔들린 비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경고로 읽습니다. 풍성한 음식이든 마음을 사로잡는 존재든, 눈앞의 달콤함만으로 평가되는 잠깐의 즐거움은 그것을 받는 이에게 실제로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또한 편안함만으로 재는 삶은, 참된 총애와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한 살찌움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맏형이 이미 알고 있었던 이유
무니카의 운명에 대한 마하 로히타의 확신은, 그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통찰로 설명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평범한 농가의 살림과 다가오는 혼례라는, 돼지가 갑자기 제 분수를 넘는 먹이를 받는 까닭을 기꺼이 묻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보이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반면 출라 로히타의 질투는 눈앞에 보이는 것의 표면에서 멈추었고, 그 몫들을 무엇에 쓰는지 묻지 않고 분량만 견주었습니다. 본생담은 마하 로히타의 지혜를 어떤 특별한 감각보다는, 주어진 편안함이 실제로 무엇을 위해 쓰이는지 묻는 단순한 습관에 돌립니다. 출라 로히타가 그 습관을 얻은 것은, 그 답이 가장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을 지켜본 뒤였습니다.
비구를 치켜세우지 않고 그린 대비
틀 이야기의 비구는 사람이며, 옛 이야기 속 어떤 동물보다도 영적인 길에서 앞서 있다고 여겨지지만, 두 소보다 더 너그러운 대우를 받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두 소 가운데 누구와도 아닌, 바로 무니카와 직접 동일시하심으로써 이 비유를 누그러뜨리지 않으십니다. 비구의 집착은 생명을 지켜 주는 노동이 아니라, 그 생명의 끝을 알리는 사치에 가깝다고 드러납니다. 이 의도적으로 치켜세우지 않은 대비는, 그가 여인의 관심을 그것이 실제로 빼앗으려 했던 것과 다른 무엇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깨우기 위한 것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팔리어 경전 소부(쿳다카 니까야) 가운데 본생담 제30화로, 여인에게 마음이 흔들려 출가 생활을 버릴 뻔한 비구의 이야기입니다. 그 여인은 전생에 자신도 모르게 한 생명의 죽음을 불러들인 적이 있었습니다.
두 마리 일소 형제인 마하 로히타와 출라 로히타는 마른 볏짚을 얻기 위해 날마다 힘써 일했습니다. 반면 무니카라는 이름의 새끼 돼지는 좋은 쌀밥을 얻어먹으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마하 로히타는 무니카의 풍성한 먹이가 혼례 잔치를 위해 살을 찌우는 것이며, 참된 총애가 아니라 죽음의 음식임을 설명했습니다.
무니카가 예언대로 도살되자, 출라 로히타는 안전하게 얻은 정직한 노동의 결실이 도살을 눈앞에 두고 먹는 진수성찬보다 귀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부처님은 욕망에 휘둘린 비구를 무니카로, 아난다를 출라 로히타로, 그리고 당신 자신을 마하 로히타로 밝히셨습니다. 같은 여인이 비구를 흔들었고,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돼지까지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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