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이 공덕을 얻는가에 관한 서두의 이야기
팔리 성전의 자타카 제144번은, 제타바나 근처에 머물던 아지위까 수행자들(당대의 비불교 고행 교단으로, 혹독한 고행으로 알려진)에게 그들의 극심한 고행이 과연 어떤 공덕이라도 얻는지에 대한 물음이 일어난 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불을 섬기던 한 수행자가 자신의 헌신이 바로 그런 공덕을 얻어 준다고 믿었던 이야기를 떠올리셨습니다.
그가 태어난 날 피운 불
그 전생에서 보살은 북녘 나라의 바라문 가문에 태어났는데, 태어난 바로 그날 부모는 가문의 관습에 따라 그를 위해 제사의 불을 피웠습니다. 그는 자라서 세속을 떠났을 때, 그 똑같은 불을 까시 근처 숲의 은자 거처로 가져갔습니다. 그는 오십 년 동안 그 불을 충실히 돌보았는데, 헌신의 대가로 불의 신이 천상의 재생을 베풀어 주리라고 믿었습니다.
축복의 대가로 받은 소
은자의 거처에 축복을 구하러 온 한 마을 사람이 감사의 뜻으로 수행자에게 소 한 마리를 주었습니다. 수행자는 그 소를 자신의 헌신이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공물로 성스러운 불에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사에 앞서 치를 정화 의식에 쓸 물이 필요했기에, 그는 소를 거처 근처에 매어 두고 강가로 내려가 물병을 채웠습니다.
가죽과 꼬리만 남긴 도둑질
수행자가 강에 가 있는 사이, 굶주린 도둑 무리가 은자 거처에 숨어들어 소를 잡았습니다. 그들은 성스러운 숯불 위에서 고기를 구워, 가져갈 수 있는 고기는 한 점도 남기지 않고 먹어 치웠으며, 가죽과 꼬리만 남겼습니다. 물병을 들고 돌아온 수행자는 공물이 매여 있던 먼지 속에 이 찌꺼기만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 저녁조차 지키지 못한 신
역겨움에 사로잡힌 수행자는 나무 집게로 꼬리를 집어 올려 타오르는 불속에 던졌습니다. 그러고는 지나가는 도둑 몇 명으로부터 이토록 검소한 식사조차 지키지 못하는 신이 어떤 신이냐고 따졌습니다. 같은 불이 산더미 같은 버터와 곡식은 아무 말 없이 삼키면서도, 바쳐진 것을 지키려고 한 번도 나서지 않는다고.
꼬리 하나로 무너진 오십 년의 헌신
그 역겨움의 순간, 수행자는 오십 년의 충실한 돌봄이 한 번도 보여 주지 못한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가 섬긴 불에는 영혼도, 마음도, 헌신의 공물과 훔친 것을 구별할 힘도 없었습니다. 누가 무엇을 왜 바쳤든 상관없이, 눈앞에 놓인 것을 똑같이 맹목적인 무관심으로 태울 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꺼진 불
도둑이 남긴 찌꺼기 하나로 이 진리가 드러나는 것을 본 수행자는, 반세기 동안 돌보아 온 제사의 불에 물을 부었습니다. 그는 불을 섬기던 집게를 내려놓고, 대신 명상의 수행으로 향했으며, 마침내 오십 년 동안 불을 돌보아도 한 번도 가까이 가지 못했던 깊은 선정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불탄 소꼬리로 돌아온 부처님의 대답
부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불러일으킨 물음에 답하시며 이야기를 맺으셨습니다. 아지위까 수행자들의 극심한 고행도, 수행자가 불 앞에서 보낸 오십 년처럼, 힘들고 오래 지속된다는 이유만으로는 아무런 공덕도 얻지 못합니다. 공덕은 외적인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의식이 너무도 쉽게 대신해 버리는 내적인 수행에 있습니다. 누구도 그 차이를 알아채지 못하다가, 도둑질이나 스승이 마침내 그 물음을 드러낼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불보다 오래 남은 가르침
수행자를 마침내 자유롭게 한 것은 어떤 설법이나 갑작스러운 환상이 아니라, 평범한 한 번의 실망이었습니다. 그것은 오십 년의 의식이 조심스레 유지해 온 환상을 단 하루 오후에 벗겨 냈습니다. 가슴속 번뇌를 실제로 태워 없앨 수 있는 불은 화덕에서 타오르는 불이 아니라, 오직 분별의 지혜로만 붙일 수 있는 불이었습니다. 오십 년 동안 불을 돌본 수행자에게 가르쳐 준 것은 인내뿐이었습니다. 한 마리 훔친 소가 단 하루 오후에, 참된 보호와 참된 공덕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 불이 끝내 보여 줄 수 없었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반야 바라밀과 미신적 제사 의식의 허망함을 통렬히 깨부수는 제144화 본생경 이야기입니다.
고대 베다교의 맹목적인 '배화 의식(불 숭배)'을 날카로운 철학적 유머로 풍자합니다.
도둑으로부터 제 밥그릇 하나 지키지 못하는 무생물 불을 신으로 모시는 어리석음을 폭로합니다.
외형적인 제물을 태우는 불 대신, 마음속 번뇌의 때를 태우는 계·정·혜의 내면의 불을 밝히라고 설합니다.
보살은 평생 굳어진 미신의 족쇄를 단숨에 깨부수고 바른 해탈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