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비웃던 추종자에 관한 서두의 이야기
팔리 성전의 자타카 제247번은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서 장로 랄루다이에 관하여 설하신 것이다. 두 수제자가 어떤 물음을 놓고 토론하고 있었고, 듣고 있던 비구들은 그들을 칭찬하였다. 회중에 앉아 있던 랄루다이는, 그들의 지식이 자신의 지식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 여기며 입술을 비틀어 비웃었고, 모임은 흩어졌다. 훗날 법당에서 비구들이 그의 비웃는 표정을 이야기하자, 부처님은 그가 전생에도 입술을 비트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이 모든 것에 답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자연스러운 후계자 없이 남겨진 나라
그 전생에서 브라흐마닷타 왕이 바라나시를 다스렸고, 보살은 영적이고 세속적인 일에 그의 조언자였다. 왕이 붕어하고 장례의식이 끝나자, 신하들은 그의 아들인 파단잘리 왕자를 왕위에 올리자고 제안하였다. 왕자는 악명 높게 게으르고 나태하였으며, 보살은 정말로 그런 자에게 관을 씌우려는 것이냐고 물으며 반대하였다.
첫 번째 송사와 비비꼰 입술
신하들은 법정 심리를 열었고, 어린 왕자를 자기들 사이에 앉혔다. 그들은 일부러 잘못된 판결을 내려, 재산을 엉뚱한 주인에게 넘기고는, 자신들이 올바르게 판결했는지 그에게 물었다. 파단잘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입술을 비틀었다.
의문을 품은 대신
보살은 이 말없는 몸짓이 왕자가 잘못을 알아챘다는 뜻인지 생각하며 게송을 읊었다. 그 뜻은, 파단잘리의 비틀린 입술이 그가 더 깊은 무언가를 알아보고 있음을 보여 주므로, 그가 지혜에 있어 모든 이를 능가하는 듯하다는 것이다.
이튿날과 올바른 판결
이튿날 신하들은 다시 심리를 열었는데, 이번에는 올바르게 판결하고 그에게 의견을 물었다. 파단잘리는 앞서와 똑같이 다만 입술을 비틀었다.
그 몸짓이 실제로 뜻했던 것
그러자 보살은 왕자가 완전한 바보라고 결론 짓고 두 번째 게송을 읊었다. 그 뜻은, 파단잘리는 옳고 그름,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며, 쓸모없는 입술 말고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잘못된 판결에 대한 반응과 올바른 판결에 대한 반응이 똑같다면, 그 안에는 판단이 없고 오직 텅 빈 습관만 있을 뿐이다.
실제로 지켜보고 있던 이에게 넘어간 왕관
신하들은 파단잘리가 바보임을 알아보고 그를 물리쳤으며, 보살을 왕으로 세웠다. 그들은 참된 판결과 거짓된 판결을 구별할 수 있는 대신을, 그런 분별을 한 번도 보여 주지 못한 입술의 왕자보다 신뢰하였다.
부처님의 정체 밝힘
이야기의 끝에서 부처님은 비구 랄루다이를 왕자 파단잘리와 동일시하셨고, 자신을 지혜로운 신하와 동일시하셨다. 잘못된 판결과 올바른 판결을 똑같은 경멸로 맞이했던 그 빈 몸짓이, 랄루다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받으려 했던 칭찬에 여전히 지니고 있던 습관이었다.
한 옥좌를 넘어 이어진 가르침
파단잘리를 끝내 드러낸 것은 결코 말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침묵 그 자체는 가득 찬 마음인지 빈 마음인지에 대해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그것은 단순한 일관성의 시험이었다. 앞에 놓인 진실이 옳든 그르든 똑같이 되풀이되는 몸짓은, 결국 말을 넘어서는 깊은 지혜가 아니라, 누군가 그것을 두 번 시험해 보기로 마음먹으면 오래 가리지 못하는 공허함을 드러냈다. 같은 시험이 랄루다이 자신의 비웃음에도 깔끔하게 들어맞았다. 그의 비웃음은 칭찬이 마땅한지 아닌지와 무관하게 모든 경우를 같은 멸시로 맞았다. 그의 비웃음도 왕자의 침묵처럼, 실제로는 아무것도 판단한 적이 없었다. 자신이 응하는 대상의 진실에 따라 결코 변하지 않는 반응은 더 이상 바깥의 무엇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실제 분별이 깃들었던 시절이 한참 지난 뒤에도 순전한 반사로 되풀이되는 고정된 습관이 되어 버린다.
집으로 가져갈 교훈
부처님의 청중은 이 교훈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지혜의 드러냄을 신뢰하기 전에, 그것이 옳음과 그름을 구별한다는 분명한 증거를 찾으라. 아무 비용도 들지 않고 아무것도 분별하지 않는 경멸은 통찰이 아니며, 공동체는 자신이 실제로 시험해 볼 수 있는 판단을 요구하는 편이 좋다. 이는 인내와 선의를 가진 누구나 적용할 수 있는 시험이다.
알고 계셨나요?
어리석음의 텅 빈 침묵을 숨겨진 지혜로 착각하지 말라고 경계하는 정전 이야기입니다.
재판마다 입술을 비틀기만 했던 어리석은 파단잘리 왕자의 애처롭고도 거의 희극적인 인물을 소개합니다.
통치자는 아첨하는 이들의 찬사를 받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입증된 도덕적 분별력을 보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신하들이 어떤 날은 잘못 판결하고 다음 날은 바르게 판결한 과정을 보여 줍니다. 왕자의 입술 비틀기는 두 번 모두 같았으니, 그것이 아무 판단도 담고 있지 않았음을 드러냅니다.
후계자가 분명히 자격이 없을 때 누가 다스릴 자격이 있는지는, 출생만이 아니라 지혜와 덕으로 정해야 한다고 확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