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를 가혹하게 대한 장로의 이야기
부처님께서는 빨리 경전의 제249번 자타카를, 자신의 보살핌 아래 있던 사미를 너무도 가혹하게 대하여 그 젊은이가 속세로 돌아가 버린 한 장로 비구와 관련하여 설하셨습니다. 그 젊은이는 장로의 사과에 거듭 설득되어 돌아왔지만, 결국 더 이상 설득당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잔혹함 뒤에 달콤한 설득이 뒤따르는 이 패턴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보여 주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살라카라는 이름의 원숭이 이야기를 떠올리셨습니다.
다른 이의 원숭이를 돌보기로 한 상인
그 전생에서, 바라나시의 브라흐마닷타 왕이 다스리던 때, 보살은 지주 집안에 태어나 곡물상으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근처에는 뱀 부리는 이가 살았는데, 그는 살라카라는 이름의 길든 원숭이를 키웠습니다. 그는 뱀이 해독제를 삼킨 뒤에 그 뱀과 놀도록 원숭이를 가르쳐 두었습니다.
원숭이를 남에게 맡기고 떠난 축제
도성에 축제가 선포되자, 뱀 부리는 이는 흥겨운 놀이에 끼고 싶어 살라카를 상인의 보살핌에 맡겨 두고 칠 일 동안 집을 떠났습니다.
돌아와 원숭이를 때린 주인
칠 일이 지나자 뱀 부리는 이가 돌아와 원숭이를 찾았습니다. 살라카는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 곡식 가게에서 뛰쳐나와 그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대나무 막대로 그를 때린 뒤, 숲으로 끌고 가 묶어 두고는 잠이 들었습니다.
맞은 매를 모두 기억한 대답
살라카는 몸을 풀고 망고나무에 올라가, 잠든 사람의 머리 위로 망고 씨를 떨어뜨렸습니다. 뱀 부리는 이가 올려다보고 원숭이를 보자, 그는 달콤한 말로 원숭이를 달래어 내려오게 하려 하였습니다. 살라카가 자신의 외아들이 되고 집안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였습니다. 살라카는 대나무로 자신을 때린 자를 참된 벗으로 여길 수는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은 여기서 망고나무의 열매를 즐기며 머물 테니, 그 사람은 마음대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숲을 택한 원숭이
이렇게 말하고 살라카는 숲속으로 사라졌고, 뱀 부리는 이는 슬픔에 잠겨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길들였던 공연자 대신 자신이 가한 매질과 너무 늦게 찾아온 달램의 기억뿐이었습니다. 권력을 쥐고 있을 때 무자비하게 때리고, 그것을 잃은 뒤에야 사랑을 말하는 사람은 어떤 신뢰도 얻지 못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신원 밝히기
이야기가 끝나자 부처님께서는 사미가 원숭이였고, 장로가 뱀 부리는 이였으며, 자신은 곡물상이었다고 밝히셨습니다. 살라카는 마침내 자신의 장로가 보인 잔혹함으로 되돌아가기를 멈춘 그 사미를 상징하였습니다. 한때 원숭이를 거짓된 애정의 손길에서 안전하게 떨어져 있게 했던 그 분별력이, 바로 그 사미에게 필요했던 분별력이었습니다. 그것이 있어야 사미는 익숙한 목소리가 던지는 가장 달콤한 약속에 더 이상 응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단 하루의 축제를 넘어 남은 가르침
살라카의 거절이 지켜 낸 것은 결코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말을 실어 나르는 다정한 어조가 아니라, 그 말 뒤에 있는 행동의 양상으로 제안을 가늠하는 훨씬 더 오래가는 지혜였습니다. 살라카는 칠 일 뒤 주인이 자신을 다시 받아 주리라 믿었고, 주인의 부름에 곡식 가게에서 달려 나왔습니다. 그 믿음은 대나무 막대기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는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았고, 이 구별은 그를, 그리고 부처님이 뒤에 그와 비교하신 그 사미를, 어떤 새로운 부드러운 대우의 약속보다도 훨씬 잘 섬겼습니다.
두 번째 자유는 왜 다르게 느껴졌나
뱀 부리는 이는 살라카가 팔 닿는 거리에 있는 동안에는 한 번도 달콤한 말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망고 가지만큼 거리가 생기고서야, 다른 생명에 대한 실질적인 힘이 사라지면 애정이 얼마나 빨리 꾸며질 수 있는지 드러났습니다. 자신의 장로의 사과에 더 이상 되돌아가지 않게 된 사미는, 살라카가 이미 스스로 배운 것과 같은 교훈을 배웠습니다. 힘의 균형이 바뀐 뒤에야 주어지는 어조의 변화는 마음의 진정한 변화의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진실한 애정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더 이상 상대를 곁에 두는 데 아무것도 달려 있지 않을 때 그가 상대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있었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살라카라는 이름은 민첩함에 익숙한 작고 날렵한 숲 원숭이를 가리킵니다.
이 이야기는 압제자가 강압적인 힘을 잃었을 때에야 아첨에 기댄다는 주제를 드러냅니다.
원전에서 보살은 칠 일 동안 원숭이를 맡아 두는 곡물상이며, 부처님은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십니다.
고대 인도의 거리 공연자들은 원숭이와 코브라를 함께 부려 구경거리로 삼는 일이 흔했습니다.
이 가르침은 위선적인 애정의 과시를 꿰뚫어 보는 분별력(반야)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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