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시게 구는 사내와 새 제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 한 사건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신 뒤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갓 출가한 제자를 계속 괴롭히던 한 성가신 사내에 관한 일이었습니다. 제자는 결국 그 사내를 직접 마주하여, 이런 괴롭힘은 더 이상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일에서 아주 오래전 한 번 되풀이되었던 양상을 알아보셨고, 그 옛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주셨습니다.
나무 위에서 지켜본 신령
그 옛날 바라나시에서, 보살은 나무 신령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드리운 가지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조용히 지켜보는 증인이었습니다. 위엄 있고 당당한 왕의 코끼리가 이 길을 자주 지나다녔는데, 어느 날 그 길을 가로지른 쇠똥구리는 누가 보아도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엎질러진 술에 취한 쇠똥구리
쇠똥구리는 대상이 머무는 곳 근처에 엎질러진 술을 마시고 감각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러고는 비틀거리며 익숙한 자신의 똥무더기로 돌아왔습니다. 축축한 똥더미가 그의 불안한 무게에 살짝 무너지자, 취한 마음은 그 무너짐을 똥 자체의 무른 탓이 아니라 자신의 엄청난 힘 덕분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자리에서 무적이라는 교만이 그의 마음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두려움으로 잘못 읽은 물러섬
왕의 코끼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쇠똥구리 똥무더기의 악취에 뒷걸음질 치며 잠시 몸을 돌려 비켜섰습니다. 그 더러움에 엮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취한 쇠똥구리는 이것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위대한 짐승이 자기를 두려워하여 달아났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의 교만은 합리적인 한계를 훌쩍 넘어 부풀었습니다. 그는 똥더미 위로 몸을 치켜세우고, 한 번 자기 앞에서 달아난 상대라면 또 달아날 것이라 확신하며, 일대일로 맞서 보자고 큰 소리로 도전했습니다.
도전에 맞춘 응답
코끼리는 가던 길을 계속 가지 않고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그는 쇠똥구리에게,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한참 아래인 짐승과 발이나 코, 상아로 싸우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일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대신 이런 상대에게 어울리는 응답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무거운 똥덩어리를 쇠똥구리 위로 곧장 떨어뜨렸습니다. 잠깐 동안 취해 있던 벌레의 기세는 그 아래에서 그대로 끝나 버렸습니다.
나무 신령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던 가르침
위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본 보살은 따로 덧붙일 말이 없었습니다. 코끼리의 절제가 이미 요점을 충분히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참된 힘을 지닌 짐승이, 그를 해칠 수 없는 존재의 도발에 말려들어 싸움 쪽으로 떠밀려 갔던 것입니다. 그는 목숨을 단숨에 빼앗을 수 있는 상아로 응답하는 대신, 실제 도발의 크기에 맞추어 응답했습니다. 처음부터 그 도발에 온 힘을 쏟을 가치가 있는 것처럼 여기지 않고, 일을 완전히 마무리 지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전생의 인연을 밝히시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그 이야기 속 인물들을 밝히시며 가르침을 맺으셨습니다. 쇠똥구리는 새 제자를 괴롭히던 그 성가신 사내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코끼리는 바로 그 제자였으며, 그 역시 도발에 대해 아무 대응도 하지 않거나 상황이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확대하지 않고, 응답의 크기를 맞추었다고 하셨습니다. 팔리 경전의 제227번 자타카가 이 이야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거꾸로 읽은 두려움
쇠똥구리가 자초한 모든 파국은 한 가지 잘못된 읽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코끼리가 원치 않았던 냄새에 대해 느낀 혐오를, 판단력을 잃은 취한 마음은 코끼리가 두려워한다는 증거로 받아들였습니다. 혐오와 두려움은 일정한 거리에서 보면 비슷해 보여서, 둘 다 물러서는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근원에 있는 피하고자 하는 대상과의 관계는 전혀 다릅니다. 쇠똥구리의 치명적인 자신감은 이 둘을 혼동하는 데서 비롯되었고, 그 최초의 잘못된 읽기가 그를 사로잡은 뒤로는 그 어떤 일도 다르게 흘러갈 수 없었습니다.
코끼리는 왜 그냥 지나치지 않았는가
단순한 혐오로 이미 한 번 몸을 돌렸던 코끼리는, 쇠똥구리의 도전을 완전히 무시하고 성으로 가는 길을 계속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벌레는 텅 빈 길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돌아서서 응답하기로 했습니다. 그 도전이 그에게 실질적인 위협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를 괴롭히려고 허세를 부리는 존재는 응답받지 못하면 저절로 가라앉기보다 더 거세지기 쉽기 때문이었습니다. 코끼리의 응답은 자신의 힘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태를 끝내는 데에 정확히 맞춰져 있었습니다. 쇠똥구리의 도전은 애초에 그 힘을 시험해 본 적조차 없었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정전 자타카 제227번으로, 제2집 두까니빠따 가운데 카사와 품에 속합니다.
술기운에 부풀어 오른 하찮은 자부심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세계적으로 이름난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우화입니다.
코끼리는 게송에서 발로도, 상아로도, 코로도 그 벌레를 죽이지 않고 대신 똥으로 응답합니다. “썩은 것은 썩은 것을 죽일 것이다”라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결말의 전생 확인에서 시끄러운 젊은이를 꺾었던 그 비구로 밝혀지는 코끼리는, 역겨운 쇠똥구리를 손대기를 거부하고 시적인 합당함으로 대치를 매듭짓습니다.
천박한 싸움에 끌려들기를 거부하는 품위 있는 태도를 통해 반야(지혜) 바라밀과 평정(우뻬카) 바라밀을 구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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