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arat Devotion
Embroidered artwork for 칸하 자타카: 노모의 은혜를 갚고자 오백 채의 달구지를 끈 흑우: Embroidered Buddha seated in meditation on a pink lotus, with a golden dharma wheel and a white stupa in the mountains

칸하 자타카

노모의 은혜를 갚고자 오백 채의 달구지를 끈 흑우

가난한 노파가 자식처럼 길러 준 흑우가 은혜를 갚고자 진흙탕에 빠진 오백 채의 수레를 끌어내고, 상인이 지급을 미루려 했던 품삯을 당당히 받아낸 이야기.

견줄 데 없는 신통으로 찬탄받다

부처님은 기원정사에서 쌍신변(불과 물을 함께 나타내는 신통)을 보이시고 도리천(천계)에서 내려오신 뒤, 비구들이 모여 그분의 견줄 데 없는 능력을 찬탄할 때 이 이야기를 설하셨다. 이 이야기는 팔리 경전에 기록된 일집의 제29화이다. 부처님은 그분의 뛰어난 본성이 훨씬 더 소박한 처지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드러나 있었음을 보이기 위해, 전생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빚을 갚기 위해 주어진 송아지

바라나시의 브라흐마닷타 왕이 다스리던 때, 보살은 검은 송아지로 태어났다. 본래의 주인들이 진 빚을 갚으면서, 그들은 이 송아지를 가난한 늙은 여인에게 주었다. 여인은 자기 자식을 키우듯 따뜻한 마음으로 그를 길렀고, 그를 검은 자라는 뜻의 칼라카라고 불렀다.

제 밥값을 하겠다고 결심한 소

소는 힘센 어른 소로 자라면서, 자신을 돌보는 여인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녀를 부양할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그는 시골의 일하는 가축들 사이에서 자신의 힘을 쓸 기회를 찾아다녔다. 그는 마을의 소들 사이에서 풀을 뜯으며, 인내하고 주의 깊게 자신의 결심에 필요한 기회를 기다렸다.

발이 묶인 오백 대의 수레

한 젊은 상인이 강여울에 이르렀는데, 그의 행렬에는 각각 한 쌍의 소가 끄는 무거운 짐수레가 오백 대나 있었다. 강바닥이 너무 거칠고 위험해서 짐승들이 건널 수 없었다. 상인이 오백 쌍의 소를 한데 묶어 하나의 거대한 행렬로 만들었지만, 수레 한 대도 끌고 건널 수 없었다. 지치고 막막해진 상인은 근처에서 풀을 뜯는 검은 소를 보았고, 그 풍채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알아보고 누구의 소냐고 물었다.

한 걸음 떼기 전에 정한 품삯

상인이 콧줄로 소를 끌고 가려 하자, 칼라카는 품삯이 합의되기 전까지는 한 치도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상인은 수레 한 대를 무사히 건너게 할 때마다 두 닢씩, 모두 천 닢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소가 이 조건을 받아들인 뒤에야, 그는 멈춰 선 행렬에 묶이는 것을 허락했다.

여울을 건너다

칼라카는 발굽을 단단히 딛고 온 힘을 다해 끌어당겨, 오백 대의 수레 행렬 전체를 위험한 강바닥을 지나 단단한 땅 위로 끌어냈다. 오백 쌍의 소가 함께 애써도 완전히 실패했던 일을 그는 해낸 것이다.

반만 치른 빚

소의 승리를 지켜본 상인은, 약속한 금액의 절반만 주고 빠져나가려 했다. 천 닢 대신 오백 닢만 칼라카의 목에 걸어 주었던 것이다. 소는 그 속임수를 즉시 알아차렸고, 상인의 길을 가로막고 우뚝 버티어 서서, 전액이 자루에 담기기 전에는 그를 지나가지 못하게 했다.

같은 마음으로 돌려준 은혜

칼라카는 천 닢을 자기를 길러 준 늙은 여인에게 날라다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노동으로 이익을 취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따뜻한 물과 기름, 그리고 그녀가 마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음식으로 그를 돌보았다. 그녀는 소가 번 돈을 그저 쓸 수입으로 여기지 않고, 그가 얻은 공덕에 자신의 헌신으로 답했다.

부처님의 식별

설법을 마치며 부처님은 두 생에 걸쳐 등장한 인물들을 밝히셨다. 우빠라반나는 소를 어머니의 사랑으로 기른 늙은 여인이었다. 부처님 자신은 칼라카, 곧 검은 소였다. 그의 힘과, 공정한 품삯을 요구한 정직함과, 은혜를 갚으려는 결의는, 훗날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서 모든 장애를 넘어서게 할 바로 그 덕목들을 미리 보여 준 것이었다.

공정한 조건을 고집하는 힘

칼라카가 품삯이 정해지기 전에는 끌려가지 않으려 한 것은, 그 뒤에 따르는 힘의 과시만큼이나 이 자타카의 가르침에서 중심을 이룬다. 대가 없이 일하려는 소는, 그 동기가 아무리 헌신적이라 하더라도, 상인이 원하는 어떤 조건이든 받아들이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조심스럽게, 자신을 돌보아 준 이에 대한 감사가 칼라카에게 자신의 노동을 헐값에 내놓으라고 요구하지는 않았음을 보여 준다. 불교 주석은 한 걸음도 떼기 전에 정해 둔 공정한 품삯에 대한 이 고집을, 그 자체로 바른 노력인 정진(비리야)의 한 형태로 읽는다. 그것은 오백 대의 수레를 끄는 신체적 과업뿐 아니라, 관대함이 착취로 변질되지 않도록 막는 사전의 수양에도 적용된다.

오백 쌍의 소가 이미 실패한 까닭

이 자타카는 칼라카에게 접근하기 전에, 오백 쌍의 소를 하나의 거대한 행렬로 묶어 발이 묶인 수레들을 움직이려다 이미 실패했음을 분명히 해 둔다. 이 세부는 이야기가 그리려는 대비를 더 선명하게 한다. 칼라카와 지친 소들의 차이는 수나 맹목적인 무게의 문제가 아니었다. 상인은 이미 압도적인 수를 그 문제에 쏟아부었다. 차이는 한 마리 짐승의 집중된 결의였고, 단지 수레에 매인 힘이 아니라 목적에 매인 힘이었다.

알고 계셨나요?

『팔리 삼장』 소부 본생경 일집(에까니파타) 제29화로,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서 쌍신변을 나투시고 비구들이 그 비할 데 없는 능력을 찬탄하던 때 설하신 이야기이다.

훗날 칼라카라 불린 송아지는 고아로 구제된 것이 아니라, 원래 주인이 노파에게 진 빚을 갚는 대가로 그녀에게 주어진 것이다.

상인이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던 흑우를 알아보기 전에, 멍에로 한데 묶인 소 오백 쌍이 이미 강 여울을 건너는 데 실패한 상태였다.

흑우는 수레 한 채당 두 냥씩 품삯이 미리 정해질 때까지 움직이기를 거부했고, 상인이 절반만 지불하려 하자 그 길을 가로막았다.

노파는 흑우가 번 천 냥의 금화로 이득을 취하기를 거부하고, 따뜻한 물과 기름, 좋은 음식으로 그를 돌보았다. 부처님께서는 노파가 우팔라반나였고, 당신 자신은 흑우 칼라카였다고 밝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