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물에 잠긴 수확
부처님께서는 이 자타카, 즉 팔리 자타카 니까야의 제228번을 기원정사에서 사밧티에 살던 바라문 카마니타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바라문은 아치라바티 강가의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었습니다. 탁발하며 지나가시던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시고, 일의 매 단계마다 격려해 주셨습니다. 파종하던 날, 바라문은 곡식이 익으면 부처님을 으뜸으로 하는 승가에 넉넉히 보시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러나 수확을 하루 앞둔 밤, 상류에 쏟아진 폭우가 큰 홍수를 일으켜 곡식 전체를 바다로 쓸어 가 버렸고, 바라문은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부처님께서 그의 집을 찾아가시어, 잃은 것은 슬퍼한다고 되찾을 수 없다고 일러 주시고, 욕망(까마)에 관한 법문을 설하셨습니다. 바라문은 수다원의 경지에 들었습니다. 훗날 비구들이 법당에서 이 일을 찬탄하자, 부처님께서는 전에도 이 사람의 슬픔을 덜어 준 적이 있다고 하시며, 같은 갈망의 병을 앓았던 바라나시 왕의 옛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세 정복 도시를 약속한 왕
바라나시 성에서는 두 왕자 형제 가운데 형이 왕위에 있었는데, 재물과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욕에 지배당하고 있었습니다. 신들의 왕 제석천, 곧 이 생에서 보살이신 분이 하늘에서 그 갈망을 내려다보시고 왕을 겸손하게 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젊은 바라문의 모습을 취하여 왕 앞에 나아가, 번영하는 세 도시 웃따라빤짤라, 인다빳따, 께까까를 얻어 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도시를 모두 다스리게 된다는 전망에 눈이 부신 왕은 다음 날 출정하기로 동의했습니다.
내일 다시 오라는 말
왕은 일을 그 자리에서 정하지 않고 다음 날 출발하기로 하면서, 그 사이 젊은이에게 하룻밤 묵을 곳도, 수고에 대한 대가도 주지 않았습니다.
사라진 약속과 왕의 슬픔
왕이 젊은 바라문을 부르라고 명했을 때, 아무도 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냥 사라졌고, 그와 함께 새로운 세 도시의 약속도 사라졌습니다. 왕은 절망에 빠져 “내게서 얼마나 큰 영광이 빼앗겼단 말인가!” 하고 외쳤습니다. 한 번도 실제로 가져 본 적 없는 정복에 대한 그의 슬픔은, 궁중의 어떤 의사도 아무리 애써도 고칠 수 없는 소모성 이질이 되어 그의 몸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의사로 돌아온 제석천
제석천이 다시 내려다보니, 바라나시 왕이 채워지지 않는 탐욕이라는 이 기이한 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바라문 의사의 모습을 취하여 왕 곁으로 가서, 아무런 보수도 요구하지 않고 병을 고쳐 주겠다고 청했습니다.
어떤 의사도 이름 붙이지 못한 병
왕은 자신의 고통을 의사에게 털어놓았습니다. 병은 잃어버린 도시들에 대한 소식을 들은 데서, 그리고 자신이 지닌 탐욕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며, 그것을 스스로 지은 게송에 담았습니다. 그는 산 위에 높이 세워진 세 요새를 원했으며, 그것을 가질 수 없었기에 낫게 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바라문이시여, 탐욕의 노예인 저를 고쳐 주십시오.”
탐욕의 노예에게는 의사가 없다
제석천은 약이 닿을 수 있는 것과 닿을 수 없는 것의 경계를 긋는 게송으로 답하셨습니다. “검은 뱀에 물린 상처를 고치는 이도 있고, 지혜로운 이는 귀신이 낸 상처도 고칠 수 있다. 그러나 탐욕의 노예는 어떤 의사도 온전하게 할 수 없으니, 뒷걸음질 치는 마음에 무슨 치료가 있으랴.” 제석천의 뜻은, 뱀의 독과 귀신의 저주는 의술 앞에 굴복하지만, 갈망의 열병은 그런 치료에 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옷 네 벌, 음식 네 그릇, 침상 네 개
그런 다음 제석천은 왕 자신의 욕망을 가지고 그를 설득하셨습니다. 설령 세 도시를 한꺼번에 받는다 해도, 한 번에 옷 네 벌을 입을 수 없고, 한 끼에 그릇 네 개로 먹을 수 없으며, 하룻밤에 침상 네 개에서 잘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한 몸이 실제로 쓸 수 있는 양을 넘는 것은 참된 이익이 아니고, 그저 제 것이라는 이유로 짊어진 짐일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욕망은 모든 악의 뿌리이며, 이를 소중히 여기는 자는 큰 지옥과 작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욕망에서 낫게 된 왕
이것을 들은 왕은 마침내, 욕망이 온갖 악이 자라나는 뿌리이며, 결코 쓸 수 없는, 하물며 누릴 수도 없는 것을 뒤쫓는 것 자체가 바로 그 병이었음을 이해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갈망을 놓자, 그를 붙잡고 있던 이질에서 몸도 회복되었습니다. 제석천은 그를 계행에 머물게 하시고 하늘로 돌아가셨으며, 그때부터 왕은 아낌없이 보시하고 너그럽고 안정된 마음으로 선행을 닦았습니다.
부처님의 전생 밝히심
이야기를 맺으며 부처님께서는, 욕망의 노예였던 탐욕스러운 바라문 카마니타가 그 옛 생에서는 바라나시의 왕이었음을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젊은 바라문으로, 다음에는 의사로 그를 찾아왔던 이가 바로 자신, 제석천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정복보다 오래 남는 가르침
카마니타 자타카는 원하는 대상이 소소할 때에만 더 바라는 것이 어리석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온 나라를 갈망하다 무너진 왕을 보여 줍니다. 그는 어떤 의사의 기술이 아니라, 실제 필요에 대한 단순한 셈법으로 나았습니다. 사라진 세 도시를 넘어 남는 것은 바로 그 단순한 셈입니다. 욕망을 한 생명이 실제로 쓸 수 있는 것에 견주어 재어 보면, 흔히 자기 손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이는 팔리 자타카 니까야의 제228번 자타카로, 기원정사에서 사밧티의 바라문 카마니타에 관하여 설해졌으며, 그의 곡식 전체가 아치라바티 강의 홍수에 쓸려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병든 사람은 젊은이가 아니라 바라나시의 왕 자신입니다. 그의 병은, 사라진 젊은 바라문(곧 제석천 자신)이 약속했던 세 도시를 향한 슬픔에서 생긴 소모성 이질이었습니다.
이 생에서 보살이었던 제석천은 처음에는 젊은 바라문으로 왕을 찾아갔고, 다음에는 보수를 받지 않는 의사로 돌아왔습니다. 신이라도 탐욕 그 자체에 대한 약은 없기 때문입니다.
제석천의 게송은, 현명한 이가 고칠 수 있는 뱀의 독과 귀신의 상처를, 치료할 방도가 없는 탐욕의 노예와 대비합니다.
왕은 오직 이치만으로 나았습니다. 아무리 많은 도시를 가졌더라도, 한 사람이 한꺼번에 옷 네 벌을 입거나, 네 그릇에서 먹거나, 네 침상에서 잘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