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arat Devotion
Embroidered artwork for 실라위맘사 자타카: 덕을 시험한 사제: Embroidered Buddha seated in meditation on a pink lotus, with a golden dharma wheel and a white stupa in the mountains

실라위맘사 자타카

덕을 시험한 사제

왕이 자신의 출생, 학식, 덕 가운데 무엇을 높이 여기는지 알아보려고 사제가 금화를 세 번 훔치며, 오직 계(실라)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야기로, 제362번 자타카이다.

기원정사에서 제기된 물음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서 들려주신 이야기이다. 어떤 바라문이 자신이 받는 존경이 덕에 기대는지, 아니면 단지 학식에 기대는지를 궁금해하였다. 그 바라문은 직접 이를 시험하고자 세 번에 걸쳐 동전을 훔쳤고, 세 번째 훔쳤을 때에야 비로소 붙잡혔다. 이 일로 그는 왕의 깊은 존경을 얻은 것이 학식만이 아니라 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를 분명히 깨달은 바라문은 출가하였고, 얼마 뒤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다. 부처님께서는 바로 이 물음이 훨씬 오래전에도 한 사람을 시험한 적이 있었음을 보이시기 위해, 이미 그 답이 드러났던 전생의 이야기, 곧 제362번 자타카를 들려주셨다.

바라나시의 왕실 사제

아주 오랜 옛날 바라나시에서 브라흐마닷타가 다스리던 때, 보살은 한 바라문 집안에 태어났다. 그는 북서쪽의 위대한 학문의 중심지인 탁카실라로 가서 열여덟 가지 학예와 고대 힌두 경전인 세 베다의 가르침을 익혔다. 돌아와서는 왕실 사제, 곧 왕실의 가문 사제라는 직위에 올랐다. 왕은 그를 여느 신하들보다 높이 여겨, 풍성한 선물을 내리고 알현의 자리마다 가장 깊은 존경을 보였다.

남몰래 품은 의문

어느 저녁 홀로 앉아 있던 왕실 사제는 이 문제를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왕은 날마다 그에게 존경을 베풀었지만, 그 참된 까닭은 무엇인가? 고귀한 출신 때문인가? 힘겹게 얻은 베다 학식 때문인가? 아니면 단지 계율을 한 점 흠 없이 지켜 왔기 때문인가? 그는 궁정이 지켜보는 가운데 직접 시험해 보는 길만이 이런 물음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다고 결심하였다.

첫 번째 절도

다음 날 아침 왕을 알현한 뒤, 왕실 사제는 시장으로 내려가 동전을 세고 있던 환전상의 좌판 앞에 멈추어 섰다. 아무 말 없이 그는 쟁반에서 동전 한 닢을 집어 들고 걸어갔다. 이처럼 존경받는 분의 존재에 압도된 환전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사제에게 무슨 작은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여겼으며, 차마 따져 묻지 못하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절도

왕실 사제는 다음 날 다시 와서 똑같이 말없이 동전 두 닢을 집어 갔다. 환전상은 다시 한번 존경하는 마음에 입을 다물었다. 셋째 날 아침, 왕실 사제는 더욱 대담해져서 쟁반에 손을 넣어 한 줌의 동전을 움켜쥐고 돌아섰다. 이번에는 환전상의 인내가 완전히 바닥났고, 그는 큰 소리로 도움을 청하며 모여든 군중 앞에서 사제를 도둑이라 외쳤다.

붙잡혀 궁궐로 끌려감

군중은 더 이상 부추길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왕실 사제를 붙잡아 두 팔을 뒤로 묶고, 주먹질과 욕설을 퍼부으며 거리를 끌고 가 마침내 왕 앞에 세웠다. 환전상은 큰 소리로 고소를 되풀이하며, 이것은 오해가 아니라 현장에서 붙잡힌 절도라고 주장하였다.

왕의 애통한 판결

자신의 왕실 사제가 평범한 절도죄로 고소된 것을 보고 왕은 크게 놀라고 깊이 슬퍼하였다. 나라의 법에 매인 왕은 집행인에게 그 사람을 끌고 가 유죄가 확정된 도둑처럼 벌하라고 명하였다. 그 판결에서 지위나 직책이 그를 보호해 줄 수 있다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사제가 뜻을 밝히다

바로 그 순간 아직 묶인 채였던 보살은 왕에게 차분하게 말하였다. 자신은 도둑이 아니며 금을 탐한 것도 아니라고 그는 설명하였다. 그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시험을 통해, 왕의 존경이 자신의 출신에 있는지, 학식에 있는지, 아니면 도덕적 품행에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했을 뿐이라고 하였다. 그가 계율을 흠 없이 지키는 동안 온 궁정이 그 앞에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그가 동전 몇 닢을 손에 쥐는 순간, 오래된 혈통도 베다 학식도 그를 밧줄과 공개적인 치욕에서 구해 줄 수 없었다.

덕의 으뜸을 노래한 다섯 게송

자신의 뜻을 의심할 여지 없이 입증한 뒤, 보살은 모인 궁정 앞에서 게송을 지어 읊었다. 덕스러운 행실, 곧 계율(sīla)은 고귀한 출신과 학식과 재물, 그리고 세상의 그 밖의 모든 표지보다 뛰어나다고 선언하였다. 잘못이 의심되는 순간 이런 저급한 것들은 누구도 보증해 주지 못한다고 하였다. 오직 비난받을 데 없이 지켜 온 삶만이 결코 빼앗길 수 없는 존경을 받는다고 하였다.

왕의 참회

이 가르침을 듣고, 마침내 그의 왕실 사제가 이를 증명하기 위해 무엇을 걸었는지 깨달은 왕은 용서를 빌고 그를 영예롭게 다시 세웠다. 그러나 보살은 이미 물음에 답을 얻은 뒤였으므로, 궁중의 특권적인 삶으로 돌아갈 뜻이 없었다.

히말라야에서의 출가

왕의 허락을 받은 보살은 자신의 직위와 재물과 궁중에서의 자리를 내려놓았다. 그는 히말라야의 숲으로 들어가 수행자로 살았고, 남은 생을 모든 것을 걸고 증명하려 했던 바로 그 덕에 바쳤다.

부처님의 전생 밝히심

가르침의 끝에서 부처님께서는 그 먼 전생에 바로 자신이 이 절도를 연출하여, 덕이 학식과 혈통 모두보다 무겁다는 것을 증명한 왕실 사제였다고 밝히셨다. 기원정사의 이야기 속 바라문은 자신의 생에서 같은 물음을 시험해 보았는데, 그도 모르는 사이에 보살이 한때 걸었던 바로 그 길을 따르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시장을 넘어 이어진 가르침

이 자타카는 물려받은 존경을 얻은 존경으로 착각하는 일에 대한 차분한 경고로 전해진다. 직함과 학위, 가문의 이름은 한평생 절과 선물을 불러올 수 있지만, 누군가의 품행에 의문이 드는 순간에는 아무런 방패도 되지 않는다. 존경에 대한 다른 모든 주장이 벗겨져 나간 뒤에도 서 있는 것은 인내로 살아 낸 덕 위에 세워진 인격뿐이며, 이 이야기는 모든 독자가 그 보배를 물려받기보다 스스로 찾아 나설 것을 권한다.

알고 계셨나요?

기원정사에서, 자신의 생에 같은 물음을 시험했고 훗날 깨달음에 이른 한 바라문에 관해 설해졌다.

사제는 금화 한 닢에서 두 닢으로, 다시 한 움큼으로 점점 나아가며, 세 번째 절도에서야 붙잡힌다.

보살은 출생, 학식, 재산보다 덕(실라)이 더 높다고 선언하는 다섯 게송을 짓는다.

이야기의 끝에서 부처님께서는 이 생의 고행하는 사제가 바로 당신 자신이었다고 밝히신다.

주제별로 둘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