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난다 존자가 한때 사양한 제안
기원정사에서, 장로 아난다(부처님의 으뜸 제자 가운데 한 분)를 아끼던 한 부유한 재가 신자가 그에 대한 애정에서, 아난다가 가사를 내려놓고 세속의 삶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재산의 절반을 나누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아난다는 세속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괴로움과 얽혀 있다고 분명히 설명하며 사양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이와 똑같은 제안과 똑같은 답이 아주 먼 옛날에도 한 번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과 양념으로 맺어진 우정
그 옛날 보살은 히말라야에서 밧차나카라는 이름의 수행자로 살았고, 소박한 식사에 필요한 소금과 양념이 있을 때만 도성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한 방문 가운데 한 번 바라나시에 갔을 때, 그는 그곳의 부유한 상인과 벗이 되었습니다. 상인은 그를 자기 정원에 잠시 머물도록 초대하였고, 두 사람은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게 되었습니다.
진심 어린 애정에서 나온 재산 제안
벗의 수행자로서의 삶이 힘겹고 즐거움 없는 삶이라고 여긴 상인은, 자신이 누리는 편안함으로 그를 되돌리려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반으로 나누어 밧차나카와 함께 갖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세속의 삶은 즐겁다고, 금이 충분하고 음식이 충분하여 사람이 먹고 마시고 누워 쉬면서도 아무런 결핍을 느끼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편안함이 치르게 하는 실제 대가를 말한 답
밧차나카는 그러한 편안함이 그것을 가진 자에게 실제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자세히 설명하며 답하였습니다. 재가자의 삶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도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고, 재물을 지키거나 늘려야 할 때 쉽게 부정직으로 이어진다고 하였습니다. 흔히는 그 편안함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을 바친 하인과 부양받는 이들을 가혹하게, 심지어 폭력적으로 대하는 결말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토대 위에 세워진 삶은 벗이 상상하는 그런 평온한 삶일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밝히신 전생
자신의 뜻을 충분히 밝힌 밧차나카는, 분노도 더 이상의 논쟁도 없이 제안된 재산을 사양하고 머물던 정원으로 돌아갔습니다. 부처님은 그 부유한 상인이 로자 말리안이었다고 밝히며 가르침을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바로 밧차나카였다고 하셨습니다. 한 소중한 벗의 넉넉한 제안에 대한 그의 대답이, 아주 먼 옛날에 이미 아난다가 방금 다시 받은 바로 그 물음에 답을 준 것이었다고 하셨습니다. 팔리 경전의 본생담 제235화가 이 이야기를 이 같은 설명과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문제를 전제한 선물
로자의 제안은 결코 잔혹하거나 이기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편안하게 해 준 것을 나눔으로써 벗을 힘든 삶에서 구해 낸다고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그의 실수는, 밧차나카의 수행을 재물로 해결될 어려움으로 가정한 데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것은 밧차나카가 이미 선택한 자유였습니다. 그가 바로 그 재물이 결국 자신에게 불안과 부정직과 타인에 대한 해악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수행자가 자신만이 아니라 하인을 말한 까닭
세속의 삶에 대한 밧차나카의 이의는 단지 가장 자신이 겪는 불편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을 쫓고 지키는 일의 무게가 그것을 거절할 힘이 가장 적은 사람들에게 가장 무겁게 떨어진다는 점을 짚고 있습니다. 이 세부 사항이 그의 답을 단순한 소박함에 대한 사사로운 선호에서, 편안한 집안이 그 집안을 섬기는 이들에게 흔히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대한 더 조용한 관찰로 바꾸어 놓습니다. 집주인이 어떤 잔혹함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말입니다.
원망 없이 이루어진 사양
밧차나카가 분노도 남은 논쟁도 없이 정원으로 돌아간 일은, 그의 답이 로자의 삶의 방식을 공격하려는 뜻이 결코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진심 어린 걱정에서 나온 벗의 직접적인 물음을 받았고, 직접적인 답으로 응했습니다. 그는 로자 자신이 구하지 않은 출리를 벗에게 강요하지 않고 그 문제를 거기서 내려놓기를 택하였습니다. 이야기 어디에서도 로자가 그 사양을 모욕으로 받아들였다는 흔적은 없으니, 우정은 의견 차이를 넘어 온전히 남았던 듯합니다. 로자가 정직한 답을 원해서 던진 질문에 대해, 정직한 답을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처음 물은 두 사람을 넘어 살아남은 물음
이 이야기가 이토록 많은 생이 지난 뒤에도 다시 전할 가치가 있는 까닭은, 로자의 물음, 곧 편안함과 안정이 불안과 타협이라는 대가를 치를 만큼 가치가 있는가 하는 물음이 한 번 정해지고 끝나는 물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밧차나카가 이미 답한 지 수많은 세월이 지난 뒤, 아난다의 신심 깊은 후원자가 진심으로 같은 물음을 다시 던졌습니다. 이는 충분한 재물을 얻고 나서 어쩌면 더 소박한 삶이 더 지혜로웠을지 궁금해하는 세대마다 그 물음이 새롭게 되살아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알고 계셨나요?
가정생활에 얽힌 속박(gharāvāsa-dukkha, 재가 생활의 고통)에 대한 꾸밈없는 경전상의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부유한 벗이 말리 족의 로자이며, 장로 아난다에게도 유혹을 건넸던 인물이라고 밝히시고, 당신 자신이 밧차나카였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행자의 답변을 두 개의 게송으로 전합니다. 벗은 집의 안락함을 찬양하고, 고행자는 거짓말과 속임수에서 하인을 때리는 일에 이르기까지 그 허물을 짚어 줍니다.
보살을 고행자 시절의 별칭인 '밧차나카'(송아지 발톱)로 등장시킵니다.
세속의 호사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수행의 결심을 흔들 때마다, 수행자에게 시대를 초월한 일깨움이 되어 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