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arat Devotion
Embroidered artwork for 수카비하리 자타카: 왕위를 버린 왕의 참된 안락: Embroidered Buddha seated in meditation on a pink lotus, with a golden dharma wheel and a white stupa in the mountains

수카비하리 자타카

왕위를 버린 왕의 참된 안락

왕위를 버리고 출가한 옛 왕이 숲에서 기쁨의 탄성을 내자 자랑으로 오해받았으나, 부처님께서는 그가 전생에도 지녔던 왕의 두려움과 출가자의 고요한 평화를 드러내어 밝히십니다.

한 비구의 기쁨에 찬 외침

아누피야 망고 숲에서 장로 밧디야는 한때 왕이었으나 출가하여 아라한의 경지(초기 불교에서 해탈의 최종 단계)를 얻은 이였습니다. 그는 숲과 황무지를 거닐며 “오, 행복이여! 오, 행복이여!” 하고 거듭 외치곤 하였습니다. 이를 들은 다른 비구들은 밧디야가 자신이 얻은 복락을 자랑하며, 귀에 들리는 모든 이가 감탄하도록 자신의 성취를 선언하고 있다고 여겨 부처님께 이를 아뢰었습니다.

이번 생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밧디야의 외침은 결코 자랑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왕이었을 때 보였던 바로 그 두려움 없음이었으며, 두려움 자체가 마침내 걷혔을 때 이제 열린 안도로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왕의 불안과 출가자의 평화 사이에 있는 이 정확한 대비가 훨씬 오래전 전생에서도 밧디야에게 이미 나타났음을 보여 주시고자, 부처님은 팔리 경전의 자타카 제10번인 수카비하리 자타카를 들려주셨습니다.

브라만 고행자의 암자

그 옛날 브라흐마닷타가 바라나시를 다스리던 때, 보살(전생에서의 부처가 될 이)은 부유한 브라만 가문에 태어났으나 재산을 버리고 히말라야에서 고행하는 스승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오백 명의 제자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이끌며 고요한 계율의 삶을 살았습니다.

도성에서 보낸 우기

비가 내려 산길이 막히자, 보살과 제자들은 탁발을 위해 바라나시로 내려왔습니다. 이처럼 명망 높은 스승을 맞이하게 된 왕은 기뻐하며 우기를 왕실의 동산에서 지내 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우기가 끝나자 보살은 오백 명의 제자를 가장 높은 제자의 보살핌 아래 산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제자는 출가 생활을 위해 한때 다스리던 나라를 버린 왕이었습니다.

높은 제자의 귀환

얼마 뒤, 이 높은 제자는 옛 스승을 찾아 산에서 돌아왔습니다. 동산에서 스승을 만난 그는 스승 곁의 자리에 편안히 누워 자신이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평온한지를 거듭 중얼거렸습니다.

찾아온 왕의 의심

바라나시의 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보살에게 예를 올리러 동산에 도착하였습니다. 일어나 맞이하지도 않고 누워 있는 높은 제자를 본 왕은 그것을 단순한 게으름으로 여겨 언짢아하였습니다. 자신의 왕이 기다리며 서 있는데도 저토록 흡족하게 누워 있는 것을 보니, 이 수행자는 정말로 만족한 모양이라고 그는 말하였습니다.

보살의 해명

보살은 왕에게 그의 판단이 이 일을 전혀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일렀습니다. 이 제자는 한때 지금의 방문한 왕과 똑같은 왕이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성벽 안에서 밤낮으로 무장한 호위들에 둘러싸여, 배신과 암살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단 한순간도 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아무것도 지키지 않으니, 그는 두려움 없이 잠들고 갈망 없이 앉아 있으며, 그가 중얼거리는 기쁨은 게으름이 아니라 한 왕조 전체에 걸쳐 짊어졌던 짐을 마침내 내려놓은 사람의 순수한 안도라고 하였습니다.

참된 평안에 관한 게송

그러고 나서 보살은 이 자타카가 기억되는 게송을 읊었습니다. 다른 이에게 지켜지지 않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없는 이는, 지위와 상관없이 평안히 산다는 내용입니다. 어떤 존재가 참으로 쉬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왕좌의 부재가 아니라 갈애와 그것을 지키는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정체 밝힘

부처님은 밧디야의 기쁨을 자랑으로 오해한 비구들을 위해 이야기 속 인물들을 밝히시며 말씀을 맺으셨습니다. 동산에서 편안히 누워 있던 높은 제자는 한때 왕이었고, 그 먼 생에서 밧디야였습니다.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통치자에게 자신의 기쁨을 설명한 브라만 고행자는 바로 부처님 자신이었습니다.

같은 말이 두 번 자랑으로 오해된 까닭

오해의 정확한 양상이 틀 이야기와 그것이 예시하는 전생에서 똑같이 되풀이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옛 이야기에서 한 왕은 전직 왕의 평안을 게으름으로 잘못 읽습니다. 밧디야 자신의 시대에는 동료 비구들이 그의 기쁨을 자기 칭찬으로 잘못 읽습니다. 두 경우 모두 실수는 내면의 상태를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보이는 만족은 게으름이나 허영으로 여겨지지만, 관찰자가 한 번도 짊어져 본 적 없는 짐을 내려놓은 이의 단순하고도 값진 안도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무언가가 있음이 아니라 없음이다

이 자타카를 출가 이야기들 가운데 특별하게 만드는 점은, 묘사된 복락이 고행을 통해 얻은 새로운 즐거움이 아니라는 강조입니다. 그것은 오래되고 지치게 하는 짐이 사라진 것입니다. 전직 왕의 행복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로 온전히 이루어져 있습니다. 경비를 세울 일도, 배신을 대비할 일도, 위협을 헤아리며 잠 못 드는 밤도 없습니다. 이 자타카가 조용히 주장하는 바는, 왕이든 아니든 평범한 삶에서 불안하게 애쓰는 것의 대부분이 소유와 지위를 지키는 데 소모되며, 그것들을 내려놓는 순간 기쁨과 구별할 수 없는 가벼움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팔리어 삼장 쿳다카 니까야 본생경 에까니파타 제10화.

출리 바라밀의 숭고함을 보여 주는 이야기.

무력과 경비에 기댄 세속적 안정이 끊임없는 불안의 온상임을 밝힘.

외적인 정치 권력과 내면의 정신적 자재함을 뚜렷이 대비함.

선정의 지복을 나타내는 경전의 명구 “아호 수캉(참으로 행복하도다)”을 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