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을 잃을 뻔한 시험
바라나시에서 브라흐마닷타왕이 다스리던 때, 보살(전생의 부처님 자신)은 왕의 사제로서 궁중에서 누구보다 높이 받들어졌다. 그 존경이 그의 덕에 근거하는지 아니면 단지 출생에 근거하는지 궁금했던 그는, 왕의 신하가 보는 앞에서 날마다 왕실 창고의 돈을 훔쳤다. 마침내 그는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고 왕 앞에 끌려 나왔다. 그가 자신의 목적을 분명히 설명했을 때에야 왕은 이해하고 그를 용서하였다. 흔들린 사제는 덕의 참된 가치에 관해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되자, 자신이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하면서까지 알아내고자 했던 것을 돌아보기 위해 왕실 정원으로 물러났다.
같은 고기를 두고 고통받는 새들의 줄
그곳에 앉아 있던 그는 한 매가 푸줏간에서 고기 한 점을 낚아채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즉시 다른 새들의 무리가 달려들어, 발톱과 부리로 고기를 쥐어뜯었고,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한 매는 결국 고기를 떨어뜨렸다. 다른 새가 그것을 낚아챘지만, 곧바로 같은 공격을 받아 첫 번째 새와 똑같이 고기를 떨어뜨렸다. 같은 과정이 새에서 새로 되풀이되었고, 각자는 고기를 쥐고 있는 동안만큼 정확히 고통을 받았으며, 손을 놓는 순간 평화를 얻었다.
고기 한 점에서 알아본 갈망
보살은 이 고통의 줄에서 인간의 갈망을 정확히 그린 모습을 보았다. 사람이 움켜쥐고 집착하는 것이 무엇이든, 재물이든 쾌락이든 소유든, 고기가 새에서 새로 옮겨 가며 불러온 것과 같은 추격과 고통을 부른다. 그리고 그 손아귀를 놓을 때만 쥐고 있음이 결코 줄 수 없었던 평화가 찾아온다.
노예 여인의 희망과 절망
그날 저녁 그는 핑갈라라는 이름의 노예 여인을 보았다. 그녀는 주인이 돌아오기를 밤늦도록 기다렸다. 기다릴수록 그녀는 더 초조해졌고 더 잠들지 못하였다. 마침내 그녀가 그에 대한 모든 기대를 놓아 버렸을 때에야 그녀는 누워서 완전하고 흔들림 없는 평화 속에 잠이 들었다. 보살은 여기서 매와 같은 양상을 알아보았다. 그녀를 괴롭힌 것은 실망이 아니라 바로 희망 그 자체였고, 그것을 놓아 버리자 희망하기로는 결코 줄 수 없었던 쉼이 찾아왔다.
말없는 수행자에게서 얻은 세 번째 가르침
걸음을 옮기던 보살은, 주위의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깊은 명상에 잠긴 수행자를 만났다. 그 순간 그는, 이 세상에서든 다음 세상에서든, 명상에 온전히 잠긴 마음에서 얻는 행복을 능가하는 행복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명상의 마음 안에서는 희망과 갈망 그 자체마저 잠잠해지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전생을 밝히심
보살은 직책과 재산을 모두 버리고 숲에서 출가 수행자의 삶을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명상에서 태어나는 신통을 닦았고, 범천계에 태어날 운명이 되었다. 범천계는 깊은 선정을 통해 이르는 높은 천상의 세계이다. 부처님께서는 가르침을 맺으며, 당신 자신이 바로 그 사제였다고 밝히셨다. 한나절 사이에 서로 무관한 세 가지 광경을 본 덕에, 처형을 간신히 면한 그 사건은 덕을 시험하는 일이 처음 그를 찾아 나서게 했던 바로 그 평화로 이끌었던 것이다. 팔리 경전의 제330번 자타카가 이 설명과 함께 이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서로 다른 세 존재, 되풀이된 하나의 가르침
이 순서가 설득력을 갖는 까닭은, 보살이 이 세 가지 가르침을 찾아 나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단 하루 저녁의 평범한 흐름 속에서 그의 길을 그냥 지나갔다. 새 한 마리, 하인 한 명, 수행자 한 사람, 각각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같은 원리를 보여 주었다. 한 가지 예는 우연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서로 무관한 세 존재가 똑같은 양상을 확인해 주자, 그에게는 움켜쥠이 실제로 무엇을 치르게 하는지, 놓아 버림이 실제로 무엇을 주는지 더 의심할 여지가 남지 않았다.
더 이상 소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 평화
수행자의 고요함이 보살에게 중요했던 까닭은, 그 고요함이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매의 잠깐의 안도와 노예 여인의 지친 잠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평화라기보다는 특정한 고통이 없어진 상태일 뿐이었다. 명상은 새도 하인도 스스로는 이를 수 없었던 무언가를 제공하였다. 무엇인가를 빼앗거나 쥐거나 결국 놓아 버리는 것에 의존하지 않는 만족이다. 그래서 그것은 앞의 두 가르침의 단순한 되풀이가 아니라, 세 가르침 가운데 마지막이자 가장 높은 것으로 서 있는 것이다.
알고 계셨나요?
시라위망사 본생경 (3)은 집착의 치명적 무게와 방하착이 주는 즉각적인 평화를 빼어나게 묘사한다.
고기 조각을 문 매는 필연적으로 다툼과 공격을 불러일으키는 감각적 욕망과 재물의 소유를 상징한다.
노비 핑갈라의 이야기는 기대라는 갈애가 주는 고통과 기대를 내려놓았을 때 찾아오는 깊은 평온을 보여준다.
출리(nekkhamma)는 단순한 고행이 아니라 지금 당장 마음의 자유를 여는 직접적인 평화의 원천이다.
발톱에서 고기를 떨어뜨리는 찰나는 쫓기는 피해자에서 자유로운 초탈자로 거듭나는 결정적 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