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건련 장로가 암염소가 표범을 지혜로 물리치는 것을 지켜보다
기원정사에서 목건련 장로는 목자들에게 뒤처진 암염소 한 마리가 산 울타리 문 앞에 웅크린 표범과 마주쳐 유일한 탈출로가 막혀 있는 모습을 보았다. 공포에 몸이 굳는 대신 암염소는 뿔을 낮추고 놀란 포식자를 향해 곧장 달려들어, 그 곁을 뚫고 지나 안전하게 무리로 돌아갔다. 목건련은 암염소의 기지 있는 용기를 기쁜 마음으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 같은 표범과 같은 암염소가 그 문에서 만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답하셨다. 먼 전생에서는 똑같은 만남이 전혀 다르게 끝났는데, 돌진 대신 간청으로, 탈출 대신 죽음으로 끝난 것이다. 그 차이를 분명히 하고자 부처님은 그 옛날 일어났던 일을 들려주셨다.
염소 우리 위에 자리한 수행자의 초막
오래전 보살은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내려와 울타리를 두른 산속 빈터에 나뭇잎으로 엮은 초막을 짓고 살았다. 그 지역의 목자들은 같은 울타리를 밤 동안 가축을 머무르게 하는 데 사용했고, 아침이면 다시 가축을 몰고 나갔다. 어느 저녁, 부주의하게 뒤처진 암염소 한 마리가 무리가 집으로 줄지어 갈 때 뒤에 남겨졌다. 그녀가 문에 이르렀을 때에는 다른 모든 염소가 이미 빠져나간 뒤였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표범
표범은 이 지체를 눈여겨보고, 울타리 문 한가운데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그 때문에 암염소는 표범의 발톱이 닿는 범위를 지나지 않고서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달리 나갈 길도 없었고, 몸을 피할 높은 바위턱도 없었으며, 도울 수 있을 만큼 가까운 무리도 없었다. 자신의 유일한 길목에 웅크린 포식자를 본 암염소는 침묵이 아니라 말을 택했다. 뿔과 발굽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영리한 말이 해낼지도 모른다는 바람에서였다.
그를 삼촌이라 부르다
암염소는 부드럽게 말을 열면서 표범을 연장자인 친족으로 불렀고, 자기 어머니가 그에게 안부를 전한다고 말했다. 가족 간의 예의를 보이면 사냥꾼의 속셈이 누그러질지도 모른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표범은 감정에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비난으로 맞받았다. 암염소가 문을 지나 들어오면서 자기 꼬리를 밟았다는 것이었다. 어떤 공손한 호칭으로도 그런 상처는 용서될 수 없다고 했다.
밟힐 수 없었던 꼬리
이제 암염소는 이치로 호소했다. 자신은 표범과 얼굴을 마주 보며 다가갔고, 표범은 앞을 향해 앉아 꼬리를 뒤쪽으로 뻗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므로 가까이 가 본 적도 없는 것을 밟는다는 것은 자신에게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거짓 비난에 대한 명료하고 논리적인 답변이었으며, 성실하게 논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납득할 만한 답이었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꼬리
그러나 표범은 성실하게 논쟁하고 있지 않았다.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그는 어떤 논증도 닿을 수 없을 만큼 주장을 키웠다. 자신의 꼬리는 네 대륙에 걸쳐 있으며 그 바다와 산맥을 넘어 뻗어 있으니, 세상 어디에서든 움직이는 것은 그것을 밟지 않을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우주적 규모로 부풀려진 비난 앞에서는 아무리 신중한 논리도 그 과녁에 닿을 수 없었다.
경고받은 대로 날아 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암염소는 또 다른 방어를 내놓았다. 그녀는 표범의 꼬리가 길기로 이름났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자신은 걸어서가 아니라 뛰어올라 공중을 통해 왔다고 말했다. 표범의 쉼터를 지날 때마다 집안에서 늘 일러 온 대로, 그토록 유명한 꼬리에는 결코 닿지 않으려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었다.
표범이 비난을 완전히 바꾸다
이 응답마저 자기 전제 위에서는 반박할 수 없음을 본 표범은 꼬리 이야기를 아예 버리고, 그 자리에서 새로운 불만을 꺼내 들었다. 암염소가 지나갈 때 하늘에서 사슴 떼를 놀라게 해 흩어 버렸고, 그가 인내심 있게 노리던 먹잇감을 망쳐 놓았다는 것이었다. 이 비난은 앞선 것과 아무 상관이 없었고, 바로 그 점이 핵심이었다. 그는 비난이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진짜 비난이 필요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간청, 그리고 자비 없음
논리를 다 쓰고 변명도 바닥난 암염소는 마침내 이치를 완전히 내려놓고 오로지 목숨을 구걸했다. 자신의 무력함 말고는 내놓을 것이 없는 채로 표범의 자비를 청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표범은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고 죽인 뒤, 문에 자리 잡은 순간부터 늘 작정했던 대로, 그 자리에서 그녀를 먹어 치웠다.
지켜보기만 한 수행자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나뭇잎 초막에 있던 성스러운 수행자는 암염소의 처음 다정한 인사에서 마지막 절박한 울음에 이르기까지 두 짐승 사이의 만남 전부를 보았다. 그는 둘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이야기는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일을 지켜보았다고만 기록하기 때문이다. 말만으로는 결코 돌려세울 수 없었던 잔혹함 앞의 말없는 증인이었다.
부처님의 밝히심
부처님은 이야기를 마치시고, 먼 전생의 그 암염소와 표범이 목건련이 울타리 문에서 막 본 바로 그 암염소와 표범이었다고 밝히셨다. 그리고 모든 일이 펼쳐지는 것을 지켜본 성스러운 수행자가 바로 자신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돌진으로 탈출한 것은, 생이 거듭된 끝에 마침내 배운 교훈이었다고 부처님은 암시하셨다.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남은 가르침
팔리 삼장 제426번인 디피 자타카는 암염소의 영리함보다 그 반대의 것으로 기억된다. 결코 설득될 수 없는 상대 앞에서 예의와 논리가 완고하게 실패하는 것이다. 설득은 그가 넘어야 할 진짜 장애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암염소가 비난 하나에 답할 때마다 표범은 앞의 것보다 더 크고 답하기 더 어려운 것을 새로 만들어 냈고, 결국 간청 자체가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가 그마저도 실패했다. 불교 주석 전통은 이 이야기에서 신앙의 가르침과 함께 엄격한 실천의 충고를 오랫동안 끌어내 왔다. 해악을 품은 중생이나 사람은 이치로, 아첨으로, 또는 달램으로 자비에 이르게 할 수 없는 경우가 늘 있다는 것이다. 목건련이 보았던, 자기 뿔로 문을 뚫고 나간 암염소는 여러 생의 윤회를 거치며 마침내, 그 조상의 부드러운 말로는 결코 이루지 못했던 것을 배웠다.
알고 계셨나요?
본생담 제426번은, 목건련 장로가 암염소가 표범을 뚫고 안전하게 달아나는 모습을 본 뒤 기원정사에서 설해졌다.
같은 문 앞에서 벌어진 전생 이야기에서 암염소는 돌진하는 대신 예의와 논리를 담은 여섯 게송으로 설득을 시도한다.
표범은 먼저 그녀가 자기 꼬리를 밟았다고 주장하고, 그 꼬리가 네 대륙에 걸쳐 있다고 말하다가, 결국 전혀 새로운 비난으로 옮겨 간다.
합리적인 대답이 하나하나 제시되었으나, 표범은 결국 암염소를 붙잡아 죽이고 먹어 버린다.
부처님은 그 일을 말없이 지켜본 수행자가 바로 자신이었다고 밝히며, 같은 두 동물이 그 문에서 다시 만났다고 말씀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