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을 받아들이기를 멈추지 못한 비구에 관한 틀 이야기
스승께서 제타바나에 머무시는 동안, 필요한 물건에 욕심을 내어 자신의 제자들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게 된 한 비구에 관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 비구는 매일 아침 사왓티에 들어가 헌신적인 재가 여신도 위사카의 집에서 쌀죽과 다른 음식을 먹고, 그 후 하루의 나머지 시간 동안 다시 쭐라 아나타삔디까, 코살라의 왕, 그리고 또 다른 집들에서 먹었으며, 단 한 번의 탁발로 이미 받은 것에 결코 만족하지 못했다. 다른 비구들이 진리의 전당에서 그의 욕심에 관해 논의했을 때, 스승께서는 그를 불러 그 소문이 사실인지 물으셨다. 비구는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왜 그렇게 행동하느냐는 질문에, 스승께서는 바로 같은 그 욕심이 전생에서 이 같은 비구를 바라나시의 시체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히말라야 호수까지 데려갔다고 설명하시며, 이 유형이 이미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보이기 위해 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산속 호수 위의 황금빛 한 쌍
팔리 삼장의 자타카 제434번은 보살이 새 왕국에 태어나 고귀한 황적색 거위, 짜까와까가 된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빛나는 황금빛 깃털과 아름다운 울음소리, 그리고 평생 단 한 짝에게만 바치는 헌신으로 게송 속에서 칭송받았다. 그는 외딴 히말라야 골짜기의 연꽃으로 덮인 호수에서 정숙한 짝과 함께 살았으며, 둘은 오로지 연한 물풀과 물이끼, 떠다니는 연씨만을 먹었고, 그들의 깃털은 아침 햇살을 받아 닦아 놓은 황금처럼 빛났다.
굶주림과 두려움만을 알았던 까마귀
그때, 바라나시 외곽에서 온 식탐 많은 까마귀가 산등성이를 넘어 날아왔다. 도시에서 그는 화장터 주변과 뚫린 배수구, 도살장 사이를 떠돌며 불안하고 조급한 삶을 살았다. 그는 부풀어 오른 시체와 썩은 쓰레기를 탐욕스럽게 먹어 치웠고, 끊임없는 소화불량과 길거리 아이들이 던지는 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결코 멈추지 않는 불안에 시달렸다. 그의 깃털은 윤기 없고 기름지며 석탄처럼 검었고, 그의 눈은 충혈되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아첨으로 치장된 질문
호수의 푸른 기슭에 내려앉은 까마귀는 두 거위가 수면 위로 미끄러져 가는 것을 점점 커지는 질투심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지나친 공손함으로 보살에게 다가가, 자기 자신은 바라나시의 도살장에서 얻은 기름진 골수와 소금에 절인 기름을 밤낮으로 배불리 먹는데도 여전히 거칠고 기름지고 숯처럼 검은데, 대체 어떤 천상의 별미가 그토록 눈부신 황금빛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물었다.
아홉 개의 게송으로 세워진 대답
보살은 고귀한 머리를 돌려 길게 답하시며, 끊임없는 두려움과 격렬한 혼란 속에서 사는 생물이 자신의 살이 왜 광채를 잃었는지 궁금해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셨다. 폭력으로 얻고, 탐욕으로 쌓아 두고, 끊임없는 두려움 속에서 먹는 음식은 결코 몸이나 정신을 참으로 자양할 수 없다고 그는 말씀하셨으니, 그렇게 삼켜진 한 입 한 입마다 두려움과 의심과 후회가 함께 실려 오기 때문이다.
그 대신 해를 끼치지 않음 위에 세워진 삶
그는 대조적으로 호수에서의 자신의 삶을 묘사하셨다. 아무 생물도 해치지 않고, 어떤 피도 흘리지 않으며, 간소한 푸른 이끼와 수련, 그리고 순수한 산 이슬 방울에 만족하며 지냈다. 그의 마음은 악의가 없었고, 대신 단 하나의 짝에 대한 조용한 애정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적의 없이 살며, 소박한 양식에 만족하고, 주변의 존재들과 조화롭게 자리한 생물은 어느 특정한 식사에서 빌려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자신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뿜어낸다고 그는 말씀하셨다. 까마귀 자신의 숯처럼 검은 깃털과 여윈 몸은, 그가 분명히 말씀하신 대로, 여전히 들끓고 여전히 움켜쥐려는 마음의 외적인 거울일 뿐이었다.
들었으나 즉시 치워 버린 가르침
까마귀는 그 모든 것을 시무룩한 경멸로 들었으며, 그 대가가 그토록 명확히 설명되었음에도 쓰레기와 썩어 가는 시체라는 특유의 즐거움을 포기할 의지가 없었다. 그는 거칠게 까악거린 뒤, 사실은 결코 떠나려 하지 않았던 바라나시 배수구의 악취를 향해 날개를 퍽덕이며 돌아갔다. 보살과 그의 충실한 짝은 호수에서의 평온한 삶으로 돌아갔으며, 그를 설득하지 못한 것에 전혀 괴로워하지 않았다.
까마귀가 들을 수는 있었으나 쓸 수는 없었던 교훈
이 이야기가 의도적으로 미결로 남겨 두는 것은, 이해만으로 언젠가 까마귀의 길을 바꾸리라는 어떤 암시이다. 그는 설명 전체를, 게송 하나하나를 다 들었으면서도, 폭력 위에 세워진 식생활을 포기하는 더 어려운 일보다 익숙한 배수구의 불편함을 그저 선택했다. 진리를 알아보는 것과 그에 따라 사는 것은 완전히 서로 다른 성취이니, 이야기가 그 둘을 한 대화 안에 얼마나 가까이 나란히 놓아두든 마찬가지이다. 두 거위로서는, 자신들의 답을 준 후에는 그 교훈을 더 강제하려 애쓴 적이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용한 삶으로 돌아가며 두 번째 논쟁을 제시하지 않는다. 마치 진리 그 자체는, 받아들이거나 버릴 자유가 있는 청자에게 한 번 분명히 말해진 뒤에는 그 이상의 강화가 필요 없다는 듯이.
부처님의 신원 확인
스승께서 이야기를 마치셨을 때, 그 안의 각 생물이 누구였는지를 밝히셨다. 탐욕스러운 까마귀는, 그분께서 말씀하신 대로, 전생의 바로 이 탐욕스러운 비구였다. 그와 함께한 충실한 거위는 라훌라 자신의 어머니였고, 아홉 게송을 말한 고귀한 거위는 스승 자신이었다. 이 가르침을 끝까지 들은 뒤, 한때 한 끼 한 끼를 위해 집집마다 뛰어다녔던 그 비구는 두 번째 도의 결실을 얻었다.
같은 까마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
이 자타카는 같은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오래된 이야기와 그 기본 형태를 공유한다. 거기서는 까마귀가 다른 거위 한 쌍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흐릿함에 대해 다른 설명을 받는데, 그것은 그의 폭력적인 식생활을 직접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악행의 잔재에 초점을 둔 것이다. 둘을 함께 읽으면 주목할 만한 것이 드러난다. 왜 한 생물은 빛나고 다른 생물은 흐릿한 채로 남는가 하는 하나의 표면적인 질문은, 그 생물의 일상 습성이 지닌 잔혹함에서 비롯되든, 그 생물이 이미 저지른 일의 더 깊은 무게에서 비롯되든, 한 가지 이상의 각도에서 진실하게 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알고 계셨나요?
붉은 원앙(착카바카)은 고대 인도 문학에서 찬란한 황금빛 생명력과 우아함, 불변의 부부애를 상징하는 신령한 새이다.
까마귀의 탐욕스러운 식탐과 원앙의 '소욕지족(산투티)'이 빚어내는 삶의 결을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불교 윤리학은 살생과 폭력으로 얻고 공포 속에서 삼킨 음식은 몸의 윤택함과 마음의 평화를 파괴한다고 가르친다.
까마귀의 검고 거친 깃털은 탐욕과 분노, 불안으로 들끓는 내면이 외모로 투영된 거울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불살생(아힘사)과 바른 생계(정명)야말로 세속의 온갖 진수성찬을 뛰어넘어 몸과 영혼을 빛나게 하는 참된 미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