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보관 규칙에 얽힌 액자 이야기
팔리 경전의 제406 자타카는 승단이 비구가 약을 얼마나 오래 보관할 수 있는지 제한하는 까닭을 설명하기 위해 붓다가 들려주신 이야기다. 이 규칙은 작고 합당해 보이는 비축물조차 몰래 집착으로 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미 다른 모든 것을 버린 마음에서도 이런 작은 축적이 얼마나 쉽게 뿌리내리는지 보여 주기 위해, 붓다는 옛 이야기를 떠올리셨다. 그것은 각기 제국을 버린 두 왕이, 소금 한 줌 속에서 여전히 탐욕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된 이야기였다.
만난 적 없지만 벗이라 부른 두 왕
그 전생에서 보살은 탁샤실라를 중심으로 간다라를 다스렸고, 이웃 나라 비데하에서는 뜻을 같이하는 왕이 같은 덕으로 미틸라를 다스렸다. 두 군주는 서로의 앞에 한 번도 서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를 오가던 상인들을 통해, 그들은 명성과 함께 나눈 이상과 평판만으로 우정을 쌓았고, 서로에 대해 전해 들은 덕으로만 상대를 알았다.
일식을 보고 왕좌를 내려놓은 왕
어느 밤 월식이 하늘을 어둡게 하는 것을 지켜보던 간다라의 왕은, 가장 밝은 빛조차 한순간에 얼마나 완전히 삼켜져 가려질 수 있는지에 놀랐다. 그 어두워지는 달에서 그는 자신이 아직 자기 것이라 부르던 모든 영화를 기다리는 같은 운명을 알아보았다. 그는 왕국을 신하들에게 넘기고, 숲 수행자의 나무껍질 옷을 입고, 홀로 히말라야로 들어갔다.
뒤에 남아 있을 수 없었던 벗
비데하의 왕은 벗이 수행자의 삶을 위해 탁샤실라를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하루라도 더 왕좌에 머물 명분을 찾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벗이 이미 간직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바로 그 근심에 자신이 계속 얽매여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자신의 왕관을 아들의 머리에 올려놓고, 벗이 택한 바로 그 광야를 찾아 떠났다.
산 연못가에서 다시 만난 두 수행자
이제 왕의 표식을 모두 벗어 버린 두 사람은, 히말라야 깊은 곳의 산 연못가에서 서로를 만났다. 각자의 궁정에서 그들을 구별 짓던 고귀함이 서로의 몸가짐에서 여전히 드러나 있었다. 그들은 나란히 잎사귀 오두막을 지었고, 그날부터 야생 과일과 숲이 내어 주는 소박한 잎을 먹으며 함께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더 궁핍한 날을 위해 간직한 소금
광야 가장자리의 한 마을로 탁발을 나갔을 때, 한 신도가 비데하의 왕에게 밋밋한 숲의 채소에 간을 할 소금을 조금 주었다. 비데하는 그것을 한꺼번에 다 쓰지 않고 일부를 따로 떼어 두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어느 날은 탁발이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못할 수도 있으니, 아껴 둔 소금이 그런 더 궁핍한 끼니에 간을 해 줄 것이라고 여겼다.
그 축적을 그 이름으로 부른 질문
그날 저녁 보살은 비데하가 가사의 주름 속에 조심스레 묶어 둔 작은 꾸러미를 알아보고,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비데하가 더 굶주릴 날을 대비해 간직하고 있다고 설명하자, 보살은 진실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열여섯 천 개의 도시와 셀 수 없는 보물 창고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온 사람이, 이제 이 작은 천 한 자락 속에서 그가 제국을 버리며 벗어나려 했던 바로 그 움켜쥠을 실천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한 나라의 포기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작은 천 자락
비데하는 이 꾸지람을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처를 입은 그는 되받아 말했다. 보살은 예전에 자신만 훈계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은 왜 다른 사람을 고치려 드느냐고. 비록 옳은 말이라도 사람에게 날카롭게 말하는 것은, 그에게는 무딘 칼날로 면도를 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보살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불의를 싫어하기 때문에 의로움에서 말한다고 하였고, 듣는 이가 기분 상하든 말든 진실을 계속 말하겠다고 했다. 진리는 오래 남기 때문에, 그는 부드럽고 날 진흙만 다루는 옹기장이처럼 벗을 어루만지지 않고, 벗을 거듭 바로잡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사람들이 그릇과 같아서, 지혜와 바른 행실로 훈련된 이도 있고, 눈먼 물소처럼 훈련되지 않은 채 떠도는 이도 있다고 말했다. 이를 듣고 비데하의 노여움은 가라앉았다. 그는 이제부터 훈계받기를 청하며 성급했던 말을 사과했고, 보살은 그를 용서했다. 내일을 위해 한 조각이라도 몰래 간직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 어떤 버림도 온전하다고 할 수 없으며, 두 벗은 함께 히말라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보살은 그에게 명상의 주제를 주었고, 두 사람 모두 선정과 신통을 얻었다.
붓다의 정체 밝힘
이야기 끝에서 붓다는 비데하의 수행자 왕이 자신의 제자 아난다였다고 밝히셨다. 그리고 간다라의 왕이 바로 자신이었음을 청중이 알게 하셨는데, 그 왕의 한 가지 질문은 소금 한 줌도 버려진 나라의 온 무게를 여전히 지닐 수 있음을 드러냈다고 하셨다. 승단이 비구가 약을 얼마나 오래 비축할 수 있는지 제한하는 규칙도 바로 이 옛 이야기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그러므로 어떤 제자도 작고 합당해 보이는 비축물을 그것이 보이는 것처럼 해롭지 않은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알고 계셨나요?
간디라 자타카는 참된 출리가 외적인 부를 버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음속 극미한 축재의 욕망까지 끊어내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탁샤실라는 고대 인도에서 베다와 불교 철학을 수학하던 최고 수준의 학문 중심 도시였다.
월식의 비유는 팔리 문헌에서 세속적 부귀의 덧없음과 영적 출리심(삼베가)을 일깨우는 상징으로 자주 쓰였다.
내일을 위해 음식을 모아두는 것은 초기 불교 유행승들의 엄격한 무소유 청빈 정신에 위배된다.
이 이야기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도를 닦고 깨달음을 함께 추구하는 진정한 도반의 우정을 기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