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의 서원만 지키는 이들을 위한 가르침
기원정사에서 붓다는, 새벽이 아닌 정오부터만 지키는 자신들의 포살(주기적으로 재계와 계율을 지키는 불교의 수행일) 실천이 너무 불완전해서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재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반쪽만 지킨 서원이라도 진심으로 바치면 위대함으로 익어 갈 수 있다고 하시며, 팔리 경전에 제421 자타카, 강가말라 자타카로 전해지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반나절 단식을 한 일꾼
바라나시의 브라흐마닷타 왕 치세에, 보살은 수치파리바라라는 부유한 상인 밑에서 가난한 일꾼으로 일했다. 신성한 단식일 정오에 주인의 집에 이르렀을 때, 그는 온 집안이 이미 새벽부터 포살을 지키고 있음을 보았다. 하루의 절반이 이미 지나갔음에도, 그는 남은 시간만이라도 계율을 지키게 해 달라고 청했다. 상인은 그에게 “절반의 의무”만 허락했고, 일꾼은 그 절반을 온전한 진심으로 지키며 오후 내내 심한 배고픔을 견뎠다. 바로 그날 저녁, 자신이 지킨 도덕 계율을 명상하던 중 그는 세상을 떠났다.
반쪽의 서원으로 태어난 왕자
그처럼 불완전한 공덕의 힘으로, 보살은 바라나시 왕비의 아들인 우다야 왕자로 다시 태어났다. 때가 되어 그는 왕위를 이었고, 기이하게도 바로 직전의 생에서 미천한 일꾼이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왕좌에 앉아 있을 때면 우다야 왕은 때때로 그토록 작고 불완전한 덕행이 자신에게 가져다준 위대한 영광을 소리 높여 노래하곤 했다.
반 푼이라 불린 물장수
도성 북문 가까이에는 아다마사카, 곧 “반 푼”이라 불리는 가난한 물장수가 살았다. 그가 세상에서 가진 전부는 구부러진 반 푼짜리 동전 하나였고, 그는 그것을 벽돌 담의 갈라진 틈에 숨겨 두었다. 그는 가난한 여인과 오두막을 나누어 썼는데, 축제날이 오자 그녀는 동전을 꺼내어 함께 작은 즐거움을 사자고 제안했다.
한낮의 열기 속에서 부른 노래
이 축제 간식을 떠올리며 기쁨에 찬 아다마사카는, 맨발 아래 땅이 달아오른 채로도 정오의 뜨거운 햇볕을 뚫고 긴 길을 달려가 담장까지 갔고, 가는 내내 즐겁게 노래했다. 테라스에서 지나가던 우다야 왕은 이토록 혹독한 더위 속에서도 기쁘게 노래하는 사내를 보고, 그토록 불편한 가운데 어떻게 그리 명랑할 수 있는지 궁금하여 그를 불러들였다.
왕이 걸인의 만족을 시험하다
왕 앞에 불려온 아다마사카는, 그를 태우는 것은 더위가 아니라 반 푼어치 축제 과자를 바라는 마음이며, 그 작고 만족스러운 바람은 어떤 햇볕과도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흥미를 느낀 우다야 왕은 그가 적은 것에 만족하는 마음을 무엇으로 이길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처음에는 돈, 다음에는 땅, 그다음에는 높은 벼슬을 점점 더 많이 내놓았다. 아다마사카는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마침내 왕이 더 시험하려고 왕국의 절반을 내놓자, 아다마사카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그날부터 “반 푼 왕”으로 알려져 우다야와 함께 화합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위험한 생각과 깨끗한 고백
어느 날 우다야 왕이 아다마사카의 무릎을 베고 잠들었을 때, 반 푼 왕의 마음에 공동 통치자를 죽이고 왕국 전체를 자기 혼자 차지하겠다는 생각이 일어났다. 그는 그 생각을 알아차리고 그 위험을 깨달았으며, 왕국 전체를 향한 탐욕이 거의 자신을 몰아넣을 뻔한 일에 크게 놀라, 이제는 절반조차 더 이상 가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왕을 깨워 자신의 유혹을 분명히 고백하고, 왕국은 오직 우다야의 것이니 지키라고 선언한 뒤, 떠돌이 수행자가 되어 떠났다.
왕의 이발사가 한 영리한 청
우다야의 왕실 이발사는 강가말라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왕이 머리 손질을 받는 동안 흥얼거리던, 뜻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상하고 즐거운 노래를 오래도록 눈여겨보았다. 왕비가 조언하기를, 왕을 불편하게 하기 전에 먼저 족집게를 부드럽게 쓰고 나서야 면도칼을 쓰라고 하였고, 그렇게 왕을 기쁘게 한 강가말라는 뛰어난 봉사에 대한 보상을 스스로 청할 권리를 얻었다. 그는 오직 왕의 신비한 노래가 무슨 뜻인지 알려 달라고만 청했다.
보석 옥좌 위에서 드러낸 우다야 왕의 고백
미천한 출신을 드러내기가 처음에는 부끄러웠던 우다야 왕은 결국 마음을 열고, 보석으로 장식된 옥좌에서 자신의 전 생애를 이야기했다. 죽어 가던 일꾼으로서의 반나절 단식, 그것을 기억하는 왕자로의 환생, 그리고 탐욕이라는 죄에 한때 가까이 갔던 일이 오히려 출리로 들어서는 문이 된 아다마사카의 떠남까지였다. 우다야는 자신의 영광이 오래전 그 하나의 불완전한 헌신에서 솟아났다고 설명했다.
면도칼을 내려놓은 이발사
들은 이야기에 감동한 강가말라는, 반쪽 서원과 버린 반 푼 동전 하나가 이런 행운과 자유로 이끌 수 있다면, 온전하고 자발적인 포기는 더 멀리까지 이끌 수 있으리라 결심했다. 그는 생업과 가족과 재산을 뒤로하고 히말라야의 숲으로 물러나, 지속적인 계율과 명상으로 벽지불의 깨달음을 얻었다. 벽지불은 어떤 붓다의 가르침 바깥에서 홀로 깨달으며, 다른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나아가지 않는 이를 말한다.
왕태후의 경멸과 왕의 옹호
여러 해가 지난 뒤, 벽지불이 된 강가말라는 바라나시 근처의 왕실 정원으로 날아갔다. 우다야 왕은 깊은 공경으로 그를 맞았으나, 왕태후는 날카롭게 반대했다. 이발사처럼 그토록 낮은 출신의 사람이 이토록 높이 받들어지는 것이 못마땅하다며, 고행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본래의 자리를 잊게 만드는 것 같다고 쓰디쓰게 말했다. 우다야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옛 이발사를 변호하며, 열매를 맺는 것은 출생이 아니라 겸손과 수행이라고 선언했고, 강가말라의 성취가 그것을 조금도 의심할 수 없게 증명한다고 했다.
붓다의 정체 밝힘
이야기 끝에서 붓다는, 벽지불 강가말라는 재생을 완전히 넘어섰으며, 반 푼 왕 아다마사카는 아난다였고, 이발사에게 조언한 왕비는 붓다의 아들 라훌라의 어머니(붓다의 마지막 생에서)였으며, 우다야 왕은 그 먼 옛 생의 붓다 자신이었다고 밝히셨다.
궁전을 넘어선 가르침
제421 자타카는 듣는 이에게 완벽하게 단식하거나 한꺼번에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반쪽만 지킨 서원, 내놓은 반 푼 동전, 반쯤만 이해한 노래라도, 인내하며 끝까지 따라가면 해탈에 이르는 문을 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알고 계셨나요?
우다야 왕 자신이 바로 직전의 생에서 죽어 가던 일꾼으로서 반나절 포살 단식을 지킨 이이며, 강가말라가 아니다.
아다마사카(‘반 푼’)는 별개의 인물로, 살해하려는 생각에 거의 굴복할 뻔한 뒤 공동 왕으로서 잠시 다스리다 왕좌를 버린 물장수이다.
강가말라는 우다야 왕의 왕실 이발사였으며, 물장수가 아니다. 그는 솜씨 좋게 왕의 머리를 손질한 공로로 왕의 신비한 노래에 대해 물을 권리를 얻었다.
이 이야기에서 벽지불의 경지에 오르는 이는 강가말라뿐이다. 아다마사카도 수행자가 되었지만, 깨달은 존재로 밝혀지지 않고 아난다로만 밝혀진다.
붓다의 정체 밝힘에서, 아다마사카는 아난다였고, 이발사에게 조언한 왕비는 라훌라의 어머니였으며, 우다야 왕은 붓다 자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