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경전이 쭐라 나라다 자타카와 짝지어 전하는 이야기
빨리 경전의 자타카 제435번은 고대 주석가들 스스로가 쭐라 나라다 자타카와 매우 닮았다고 기록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두 이야기 모두 한 젊은 숲 수행자가 한 여인의 매력에 이끌려 거의 암자를 떠날 뻔하다가,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다시 바른 길로 돌아오는 내용을 전합니다.
숲만을 알았던 아버지와 아들
그 전생에서 보살(미래에 부처가 될 존재)은 북방의 부유한 바라문(사제 계급) 가문에 태어났으나,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세속을 등졌습니다. 그는 어린 아들과 함께 히말라야 숲으로 들어가, 아들이 장성할 때까지 사람이 사는 마을도, 여인의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하도록 외딴 암자에서 아들을 키웠습니다.
암자를 지키는 이 없음을 알아챈 여인
어느 날 보살이 열매를 구하러 나간 사이, 아름답고 영리한 한 여인이 그 암자에 이르렀습니다. 국경의 도적들이 한 마을을 습격해 그녀를 포로들과 함께 끌고 갔는데, 그녀는 도적들을 속여 잠시 떨어져 나온 뒤 숲으로 달아났습니다. 그녀는 혼자 있는 젊은 수행자를 발견했고, 계율을 어긴 수행자는 자신의 뜻에 휘둘리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그를 사람들이 사는 마을 쪽으로 꾀어 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항하는 법을 배운 적 없던 마음
평생 여인을 만난 적이 없던 젊은이는, 외딴 숲의 청정함보다 사람들 사이에서 행하는 덕이 더 가치 있다는 그녀의 말에 맞설 힘이 없었습니다. 숲에서 자란 그에게 가르쳐진 적 없던 욕망이 그의 안에서 솟아올랐고, 그것을 알아차리거나 억누르는 법은 더더욱 몰랐습니다. 그녀가 외딴 암자를 떠나 마을로 자신을 따라오라고 제안하자, 그는 먼저 아버지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고만 말하며 동의했습니다. 아버지의 지팡이를 두려워한 그녀는 그보다 먼저 몰래 빠져나가며, 그가 따라올 수 있도록 길 흔적을 남겨 두었습니다.
한 번의 눈길로 진실을 읽은 아버지
보살이 산등성이에서 돌아와 보니, 아들은 오두막 문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고, 땔감과 물은 길어 오지 않은 채 두 눈은 허공에 박혀 있었습니다. 보살은 그 한 번의 눈길에 자신이 떠나 있던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바구니를 내려놓고 아들 곁에 앉아, 오직 다정함만을 담아 무엇이 그를 그토록 뒤흔들었는지 물었습니다.
고백과 물음
젊은이는 한 여인이 암자에 왔었고 자신은 그녀를 따라가려 한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덕이 외딴 숲에서보다 더 결실이 많아 보인다고 말하며, 그는 아버지에게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벗에 관한 아버지의 가르침
보살은 아들에게 노여움이 아니라 가르침으로 답했습니다. “믿음과 애정을 얻을 만한 벗을 고르고, 믿음직하고 참을성 있으며 생각과 말과 행동 어디에서도 남을 해치지 않는 그 벗을 지켜라. 변덕스러운 사람을 피하라. 그들은 쉬지 않고 뛰노는 원숭이와 같다. 사나운 뱀을 멀리하듯 그릇된 행위를 멀리하고, 마부가 험한 길을 피하듯 하라. 어리석은 자들과 어울리는 이에게는 슬픔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를 벗으로 삼지 말라. 어리석은 자의 벗은 근심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함께할 이들을 두려워한 아들
젊은이는 도시에서는 아버지 같은 현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대답했고, 그래서 떠나기가 두렵다며 아버지 곁에 머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에게 명상의 대상에 마음을 고정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머물기를 택한 아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젊은이는 자신이 하마터면 빠져들 뻔했던 것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는 떠나려던 계획을 접고 명상으로 돌아갔으며, 단 하루 아침의 미혹으로 거의 버릴 뻔했던 숲의 삶을 다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머지않아 신통지와 선정의 성취를 얻었고,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 모두 범천의 세계에 태어날 운명이었습니다. 이야기의 끝에서 부처님께서는 사성제를 설하시고 전생을 밝히셨습니다. 젊은 수행자는 세속의 삶을 그리워하던 그 비구였고, 그 처녀는 현재 이야기 속 같은 여인이었으며, 바로 부처님 자신이 그 아버지였습니다. 그러자 그 불만스러운 비구는 첫 번째 도의 결실인 예류과를 얻었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이 자타카의 이름 ‘할릿디라가’는 애욕의 울금빛 노란색을 가리키며, 이 이야기는 ‘애욕에 물드는 것’으로도 번역됩니다.
나뭇가지에서 가지로 뛰어다니는 원숭이의 비유는 감각적 욕망(깜마찬다)에 사로잡힌 마음이 본래 지닌 들뜸과 불안정함을 잘 보여 줍니다.
이 이야기는 보호받으며 살펴지지 않은 순진함이 감각적 자극과 갑자기 맞닥뜨릴 때 얼마나 취약한지를 경고합니다.
법(다르마)에 담긴 아버지의 지혜는 젊은 날을 존재의 덫에서 구해 낼 수 있는 궁극의 피난처로 그려집니다.
이 이야기는 마음의 주권과 영적 평화를 위한 필수적인 토대로서 출리 바라밀을 강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