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arat Devotion
Embroidered artwork for 카카티 본생담: 중개자가 된 악사: Embroidered Buddha seated in meditation on a pink lotus, with a golden dharma wheel and a white stupa in the mountains

카카티 본생담

중개자가 된 악사

본생담 제327화. 가루다 왕이 카카티 왕비를 납치하지만, 그가 모르고 바다 건너 실어 나른 악사가 오히려 그 자신이 중개자였음을 드러내는 이야기.

서원을 후회한 비구

이 이야기는 팔리 경전의 『자타카앗타와나나』에 제327번 자타카로 기록되어 있으며, 기원정사에서 부처님께서 들려주셨습니다. 한 비구가 아직도 그를 괴롭히던 그릇된 욕정 때문에 출가 생활에 싫증이 났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아무리 조심스럽게 지키는 감시라도 여인의 정절을 보장할 수는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왕이라도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시려고, 이 옛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왕과 왕비, 그리고 결코 눈을 깜박이지 않은 손님

바라나시에서, 브라흐마닷타의 혈통 아래 보살은 몸소 왕으로 다스렸고, 아름다운 까까티가 그의 정실 왕비였습니다. 고대 인도 전설의 위대한 새 신령 가운데 하나인 가루다 왕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그는 왕과 주사위 놀이를 하러 궁전에 자주 찾아왔지만, 그들의 놀이가 아무리 길어져도 그의 참된 정체는 한 번도 의심받지 않았습니다.

바다 건너로 실려 간 왕비

까까티 왕비의 아름다움에 홀린 가루다는 그녀를 납치하여, 자신의 종족이 사는 곳까지 대양 너머로 멀리 데려갔습니다. 왕은 그녀가 갑자기, 까닭 없이 사라진 것을 슬퍼하며 남겨졌습니다.

찾아 나선 악사

왕은 궁정의 악사 나타꾸웨라를 불러, 찾는 일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왕비를 찾아오라고 보냈습니다. 나타꾸웨라는 마침내 도성에서 먼 어느 고요한 호수 곁, 에라까 풀(키 큰 갈대 같은 풀) 위에 아무도 지키지 않은 채 쉬고 있던 가루다 왕 자신을 찾아냈습니다.

깃털 사이에 숨다

기회를 본 나타꾸웨라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큰 새의 깃털 한가운데에 몸을 숨겼습니다. 이렇게 그는 일곱 개의 바다를 건너, 가루다가 머무는 먼 심발리 숲까지 실려 갔습니다. 바로 그곳에 까까티 왕비가 갇혀 있었습니다.

재회와 돌아가는 길

그곳에 도착한 나타꾸웨라는 까까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녀의 처지와, 그녀가 알던 모든 것과 멀리 떨어져 지금 살고 있는 숲에 관하여, 그가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알아냈습니다. 돌아갈 때가 되자, 그는 다시 한 번 가루다의 깃털 사이에 숨어, 큰 새의 날개 위에 실려 들키지 않고 바라나시까지 되돌아왔습니다.

주사위판 앞의 노래

가루다 왕이 다음번에 주사위를 두러 왔을 때, 나타꾸웨라는 비파를 들고 두 사람 앞에 서서, 먼 숲과 그곳에서 기다리는 왕비에 관하여, 더없이 친밀하게 들리는 게송을 불렀습니다.

가루다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다

깜짝 놀란 가루다는 악사가 어떻게 일곱 바다를 건너 심발리 숲에 이를 수 있었는지 따져 물었습니다. 나타꾸웨라의 대답은 그가 정확히 어떻게 했는지를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그 순간 가루다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바로 라이벌의 전령을 자신의 비밀스러운 은신처까지 실어 나르고, 다시 되돌려 보낸 셈이었던 것입니다.

게송으로 한 고백

그 어리석음에 충격을 받은 가루다는, 사실상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선언했습니다. 연인은 서로 떼어 놓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왕비가 있는 곳에서 그녀를 가로막으려던 바로 그 궁정으로 왕비의 소식을 실어 나르는 중개인 노릇밖에 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전생의 인연을 밝히시다

부처님께서는 이야기의 두 중심 인물이 누구였는지 밝히며 말씀을 맺으셨습니다. 자신의 다루기 힘든 욕정을 곱씹던 그 불만족스러운 비구는 한때 영리한 악사 나타꾸웨라였습니다. 부처님 자신은 기다리던 왕이었고, 더 지혜로운 길을 믿고 기다린 그의 인내는 결국 보상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주사위 놀이를 넘어 전해지는 가르침

까까티 자타카는, 욕망이 이루려고 작정한 것은 어떤 벽이나 감시나 비밀로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솔직한 인정으로 전해집니다. 무언가를 훔쳐 가는 데 쓰인 똑같은 영리함이, 그것을 되찾는 데에도 그만큼 쉽게 쓰일 수 있습니다. 왕비를 끝내 돌아오게 한 것은 어떤 전투나 처벌이 아니라, 가루다가 자신의 어리석음에 느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같은 흔들림 없는 솔직함으로 그 비구 자신의 씨름에 말씀하셨습니다. 이야기는 서원이 지켜지는 것은 유혹 둘레의 담장 덕분이 아니라, 가루다처럼 분명하게 보는 데서 온다고 시사합니다. 자유롭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빼앗은 것에서 얼마나 적은 참된 평화가 오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지요.

알고 계셨나요?

이번 생에서 보살은 악사 나타쿠베라가 아니라 바라나시의 왕 자신이다. 이는 이 이야기의 초기 전승 일부가 전하던 내용과 다르다.

부처님은 기원정사에서 욕망에 시달리던 한 비구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어떤 파수꾼으로도 여인의 정절을 지킬 수 없다고 가르치셨다.

나타쿠베라는 호숫가에서 에라카 풀 침상에 쉬고 있는 가루다 왕을 발견하고, 그 깃털 속에 몸을 숨겨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일곱 바다를 건넜다.

가루다 왕이 게송으로 고백한 바에 따르면,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왕비와 남편의 악사 사이를 잇는 중개자가 되어 있었다.

부처님은 불만을 품었던 그 비구가 전생의 나타쿠베라였으며, 부처님 자신은 기다리던 왕이었다고 밝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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