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arat Devotion
Embroidered artwork for 케사와 본생: 우정의 잔치와 야생 쌀: Embroidered Buddha seated in meditation on a pink lotus, with a golden dharma wheel and a white stupa in the mountains

케사와 본생

우정의 잔치와 야생 쌀

벗 캇파를 그리워하던 은자 케사와는 왕의 도성에서 병들었으나, 히말라야에서 담백한 죽으로 몸을 회복했다. 사랑이야말로 최고의 양념이기 때문이다.

우정의 잔치

부처님은 기원정사에 머무실 때, 때로 우정의 잔치라 불리는 것에 관한 물음에 답하여 이 이야기를 설하셨다. 이는 팔리 자타카 모음집 가운데 쿳다까 니카야에 속한 제346화, 께사바 자타카이다. 그 경전은 게송을 이야기를 전하는 주석과 함께 보존하고 있다. 이 일은 왕이 베푼 보시가 아무리 관대했더라도, 왕이 바랐던 방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데서 생겨났다.

오백 명을 위한 항상 공양

재가자 아나타핀디카의 집에서는 오백 명의 비구가 끊임없이 공양을 받았다. 그 집은 누른 가사의 빛으로 환하였고, 온 승가를 위한 휴게소처럼 보였다. 어느 날 왕이 행렬을 이루어 도성을 지나다가 그곳에 모인 비구들을 보았다. 그도 성자들에게 항상 공양을 베풀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스승과 그 일을 준비하러 승원으로 갔다.

다른 곳으로 간 음식

그때부터 왕의 집에서는 좋은 쌀이 준비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내놓는 이는 왕의 대신들이었고, 누구도 애정을 담아 자기 손으로 올리지 않았다. 비구들은 그곳에서 앉아 그것을 먹는 것에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들은 좋은 그릇들을 치우고, 자신들이 신뢰하는 벗들의 집에 나누어 주었다. 그런 다음 그 집에서 차려 준 것을, 소박하든 풍성하든 가리지 않고 먹었다.

왕이 스승께 묻다

어느 날 야생 과일이 한 무더기 왕에게 올라왔고, 왕은 그것을 승가에 바치라고 명했다. 시종들이 식당으로 갔지만, 그곳에는 비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이 비구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자 왕은 의아했다. 자신의 음식은 훌륭한데, 왜 비구들이 그것을 외면하는가? 그는 승원으로 가서 스승께 그 물음을 드렸다.

스승의 답

부처님은 가장 좋은 음식은 사랑으로 베푸는 음식이라고 답하셨다. 비구들에게는 음식을 선물로 만들어 주는 다정한 손길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우정이 함께하는 곳으로 음식을 가져갔다고 하셨다. 사랑에 견줄 만한 맛은 없다고 왕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감미로운 음식, 그날의 가장 귀한 진미로 차린 식사라도, 사랑 없이 차린 것이라면 사랑으로 베푼 야생 쌀만 못하다고 하셨다. 또한 옛날의 지혜로운 이들도 병이 들었을 때 바로 이 방식으로 나았다고 덧붙이시고, 왕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히말라야의 깝빠와 께사바

옛날 브라흐마닷타가 바라나시를 다스리던 때, 보살은 까시 왕국의 바라문 가문에 태어나 어린 깝빠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탁카실라에서 학예를 익힌 뒤 고행의 삶을 택했다. 히말라야에는 오백 명의 고행자를 가르치는 께사바라는 고행자가 살고 있었다. 깝빠가 그에게 가서 오백 명 고행자의 수장이 되었고, 께사바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존중을 보였다. 두 사람은 아주 가까워졌다.

께사바가 바라나시에 머물다

어느 날 께사바는 소금과 식초를 구하러 고행자들과 함께 바라나시에 갔고, 그들은 왕의 동산에 묵었다. 왕은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고, 그들이 머물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우안거가 끝나자 께사바는 작별을 고했다. 왕은 그가 이제 늙었으니 가까이 머물러 달라고, 그리고 젊은 고행자들은 히말라야로 돌려보내라고 청했다. 께사바는 동의하고, 다른 이들을 수장인 제자와 함께 떠나보낸 뒤 홀로 남았다.

의원들이 닿지 못한 병

깝빠는 고행자들과 함께 히말라야로 돌아갔다. 깝빠와 떨어진 께사바는 마음이 불편하여 그를 만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잠을 잃자 음식도 제대로 소화되지 않았다. 피를 쏟는 이질이 생기고, 뒤이어 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왕의 다섯 집안 의원들이 그를 돌보았지만, 병은 가라앉지 않았다.

산으로 돌아가다

께사바가 왕에게 자신이 죽기를 바라는지, 아니면 회복하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왕은 그가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자신을 히말라야로 보내 달라고 께사바는 말했다. 왕은 동의하고, 대신 나라다와 몇몇 산림 관리인들을 보내 이 성자를 그곳으로 모시게 했다. 깝빠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께사바의 마음의 괴로움이 누그러졌다. 그런 다음 깝빠는 소금이나 향신료 없이, 잎에 물을 뿌린 기장과 야생 쌀로 끓인 묽은 죽을 그에게 주었고, 바로 그 순간 이질이 가라앉았다.

나라다의 물음과 께사바의 답

왕은 고행자의 상태가 어떤지 알아 오라고 나라다를 다시 보냈다. 나라다는 께사바가 건강한 것을 보고, 왕실 의원들이 실패한 곳에서 깝빠가 어떻게 성공했는지 물었다. 그는 깝빠의 암자에 어떤 신비로운 힘이 있는지 물었고, 께사바는 그곳의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나무조차 그러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깝빠의 말은 그의 마음에 감사의 울림을 남긴다고 했다. 나라다는 더 캐물었다. 가장 깨끗한 쌀과 고기에 익숙한 이가 어찌 기장과 야생 쌀을 즐길 수 있는가? 께사바는 넷째 게송에서 답했다. 음식은 거칠 수도 고울 수도 있고, 적을 수도 풍성할 수도 있지만, 사랑으로 축복받은 식사에는 사랑이 최고의 양념이라고.

부처님의 식별

나라다는 이 말을 왕에게 전했다. 그런 다음 스승은 가르침을 마치시며 그 생을 밝히셨다. 그 시절의 왕은 아난다였고, 나라다는 사리풋따였다. 께사바는 바까브라흐마였는데, 부처님이 다른 법문에서 그의 착각을 바로잡으셨던 범천이었다. 존재만으로 치유를 가져다준 벗 깝빠는 부처님 자신이었다.

잔치를 넘어선 가르침

이 이야기는 왕의 의문을, 무엇이 보시를 양분이 되게 하는가에 관한 가르침으로 바꾸어 놓는다. 왕의 쌀에도, 비구들에게도 잘못된 것은 없었다. 빠진 것은 음식을 우정으로 바꾸어 주는 개인적이고 다정한 손길이었다. 후대 사람들은 마지막 게송을 이야기 전체를 짧게 요약한 것으로 기억했다. 께사바의 회복은 몸과 마음과 가슴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보여 주며, 다정한 벗은 값비싼 약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알고 계셨나요?

케사와 본생은 팔리 본생 경집의 제346번으로, 사집에 실려 있다.

이야기의 틀은 왕이 오백 비구에게 항상 공양을 베푸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정성 어린 마음 없이 차려진 음식이었기에 비구들은 음식을 다른 곳으로 가져가 먹었다.

케사와는 캇파를 그리워하다 이질에 걸렸고, 왕실 어의 다섯 가문도 그를 고치지 못했다.

히말라야에서 캇파는 소금과 양념 없이 기장과 야생 쌀, 나뭇잎으로 끓인 죽으로 그를 낫게 했다.

케사와는 바카브라흐마, 대신 나라다는 사리불, 왕은 아난다, 그리고 캇파는 부처님 자신과 동일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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