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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roidered artwork for 인욕의 고행자: 칸티바디 자타카: Embroidered Buddha seated in meditation on a pink lotus, with a golden dharma wheel and a white stupa in the mountains

인욕의 고행자

칸티바디 자타카

인욕의 고행자

칸티바디 자타카

인욕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진 고행자가, 질투에서 비롯된 왕의 잔혹함에 흔들림 없는 용서로 답한다. 그의 몸이 눈앞에서 훼손되고 있는데도.

부처님이 이끌어 주셔야 했던 비구

기원정사에서 부처님은 드러난 분노에 굴복한 한 비구에 대해 들으셨다. 부처님은 그에게, 스스로 그 가르침을 알지 못하는 이가 베푸는 가르침 안에서 어떻게 분노가 머물 자리를 찾을 수 있느냐고 분명히 물으셨다. 인욕이 완전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비구에게 보이기 위해, 부처님은 훨씬 오래전 생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하나의 타협 없는 가르침으로 알려진 스승

까시의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보살(수많은 생을 거친 뒤 부처님이 되실 존재)은, 유산을 모두 나누어 주고 떠돌이 고행자의 삶을 택했다. 그는 히말라야에서 야생 과일을 먹으며 살았다. 훗날 그는 까시로 돌아와 왕의 동산에 자리 잡았다. 그곳에서 그는 인욕을 설하는 자, 칸티바디로 알려지고 존경받게 되었다. 그는 한 가지 타협 없는 가르침을 펼쳤다. 사람이 어떻게 대우받든, 아무리 깊이 잘못을 입었든, 분노로 그에 응답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깨어난 왕의 질투

어느 날 칼라부 왕이 신하들과 함께 동산에 와서 술을 마시고 흥청거리다가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그의 동무들은 내버려진 채 흩어져 돌아다니다가, 명상에 앉아 있는 고행자를 발견하고, 그가 평소 다가오는 누구에게나 가르쳐 주듯 자신들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왕이 깨어나 동무들이 다른 사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자, 질투심이 즉시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가 이 고행자가 무엇을 가르치느냐고 다그쳤다. 인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인욕이 얼마나 깊은지 보고 싶었던 왕은, 망나니에게 가시 달린 채찍으로 고행자를 이천 번 치라고 명했다. 칸티바디는 한마디 원망의 소리도 없이 매 맞는 것을 모두 견뎠다.

어떤 합리적인 한계도 넘어선 인욕의 시험

그래도 만족하지 못한 왕은 망나니에게 고행자의 두 손을 자르게 한 뒤, 발을, 코를, 귀를 차례로 자르게 했다. 매번 훼손이 끝날 때마다 왕은 멈춰서, 그 유명한 인욕이 아직도 버티는지 물었다. 그때마다 칸티바디는, 자신의 인욕은 왕이 빼앗을 수 있는 어떤 지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자신의 몸에 가해진 폭력은 칼이 물을 베지 못하듯 그 마음에 닿을 수 없다고 답했다.

몸을 넘어선 용서

그는 조각조각 파괴되는 와중에도 원한을 품지 않았고, 죽음을 앞두고 왕 자신이 오래 살기를 비는 말을 남겼다. 자신을 고문한 바로 그 사람에게까지 미치는 마지막 용서의 행위였다. 왕의 장군은, 전생에서는 사리풋따였던 자였는데, 나중에 와서 고행자의 남은 손과 발과 귀와 코를 싸매 주었다. 그는 부드럽게, 고행자가 다른 누구에게도 아니고 적어도 왕에게만은 화를 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칸티바디는 이처럼 좁혀진 분노조차 자신의 마음에 뿌리내린 적이 없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왕이 피할 수 없었던 응보

칼라부가 동산을 떠나려고 몸을 돌렸을 때, 땅이 그의 발밑에서 갈라졌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가장 깊은 지옥에서 솟아오른 불길이 그가 문에 이르기도 전에 그를 붙잡아, 한 걸음도 더 내딛기 전에 그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부처님의 식별

부처님은 칼라부 왕이 자신의 평생의 적수였던 데와닷따의 전생이었고, 고행자의 상처를 싸매 준 충직한 장군은 자신의 상수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사리풋따의 전생이었다고 밝히며 가르침을 마무리하셨다. 팔리 경전의 제313화 자타카는 이 설명과 함께 기록되어 있으며, 분노에 찬 비구에게 인욕이 세상이 닿을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마음속에 자리 잡을 때 얼마나 온전히 지닐 수 있는지를 보이는 증거로 주어진 것이다.

이유가 있어 거듭 던져진 물음

왕이 훼손이 있을 때마다 되풀이한 물음, 즉 인욕이 아직도 버티는지에 대한 질문은, 호기심이라기보다 끝내 실패할 때까지 계속 돌려야 하는 실험처럼 읽힌다. 칸티바디의 대답은 매번 같았고, 왕은 그가 찾던 한계에 도달했다고 받아들이는 대신 다시 수위를 높여야만 했다. 실제로 어떤 한계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자타카의 구성은 되풀이되는 장면의 진짜 주제를, 왕이 아무리 밀어붙여도 그 종류가 결코 변하지 않는 고행자의 고통이 아니라 왕 자신의 점점 커지는 폭력으로 만든다.

그를 변호한 이조차 얼마간의 분노를 기대했다

사리풋따가 고행자는 적어도 왕에게만은 화를 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은 곱씹어 볼 만하다. 그 말은 이야기 속에서 칸티바디의 고통에 가장 공감하는 바로 그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조차, 책임 있는 특정한 사람에게 완전한 용서를 베푸는 것은 상처 입은 인간에게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더 좁고 더 인간적인 크기의 분노를 일종의 허락으로 내놓았다. 그 허락에 대한 칸티바디의 침묵은, 왕 자신에게 더 항의하는 어떤 말보다도 그의 인욕이 얼마나 온전한지를 더 잘 말해 준다.

알고 계셨나요?

칸티바디는 자타카 제313번이며, 그 이름은 문자 그대로 “인욕을 설하는 자”라는 뜻이다.

고행자는 죽음을 앞두고서도 칼라부 왕을 용서하며, 왕의 장수를 빌었다.

전승에 따르면 칼라부는 데바닷타의 전생이며, 고행자의 상처를 싸매 준 사령관은 사리불의 전생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불교에서 인욕 바라밀(칸티 파라미타)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예화 가운데 하나다.

칼라부가 정원을 떠날 때 땅이 갈라져 그를 최하층 지옥으로 삼켜 버렸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