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른 소년
이 자타카는 사밧티의 한 가장에게 난 일곱 살 된 아들에 관하여 제타바나에서 설해졌습니다. 이 소년은 발자국만 보고도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말을 믿지 않고 그를 시험하였습니다. 소년이 길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는 마을 안을 구불구불하고 일부러 헷갈리게 만든 길로 걸어갔습니다. 아들은 모든 굽이에서 집마다 한 치의 실수도 없이 그 발자취를 따라갔고, 마침내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이 일을 가리기 위해 부처님 앞에 왔을 때, 세존께서는 맨땅 위의 발자국을 읽는 일에 기이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옛 현자들은 허공에서도 발자취를 읽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존 자신도 먼 옛날 바로 이 기술을 지니고 있었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왕비의 맹세와 야차의 탄생
먼 옛날 바라나시의 한 왕비가 남편에게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녀는 만약 정말로 남편에게 잘못을 했다면 말머리를 한 야차, 즉 불교 전승에 나오는 여귀로 태어나리라고 맹세하였습니다. 자신의 맹세대로 그녀는 죽은 뒤 바로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넓은 숲 속 바위 동굴에 사는 말머리 여귀가 된 것입니다. 그녀는 삼 년 동안 야차들의 수호왕 웨싸바나를 섬기도록 묶였습니다. 그 대가로 그녀는 자신의 영역 안에 있는, 삼십 요자나에 이르는 긴 길을 지나는 여행자를 누구든 붙잡아 잡아먹을 수 있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요자나는 고대의 거리 단위로, 며칠을 걸어야 닿는 길이입니다.
남편으로 맞이한 포로
어느 날 그녀는 그 길을 걷던 부유하고 준수한 젊은 브라만을 붙잡았습니다. 그녀는 전에 그렇게 많은 이를 먹어 치웠듯 그도 잡아먹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위엄 있는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녀는 그의 목숨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녀는 그를 숲 깊숙한 곳에 남편으로 데리고 살았으며, 그가 잃어버린 인간 세계로 돌아갈 길을 전혀 찾지 못할 만큼 깊이 숨겨 두었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출생의 진실을 알다
그들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고, 그가 이 이야기의 보살로 자랐습니다. 소년이 성년에 이르자 아버지는 그들이 포로가 된 진실을 들려주었습니다. 신중한 물음을 거듭하여 아들은 어머니의 묶인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녀와 그녀의 부류가 결코 건널 수 없는 그 경계 너머로 탈출해야 한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이 기이한 삶을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탈출의 위험을 감수하기로 동의하기까지 상당한 설득이 필요하였습니다.
강을 건너 달아남
야차가 자신의 볼일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들은 달아났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그녀 영역의 경계를 이루는 강에 이르렀을 때, 마침 그녀가 돌아와 분노에 차 쫓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물을 건너 따라갈 힘이 없음을 깨달았고, 분노는 슬픔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 불렀습니다. 저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떠나는 아들에게 한 가지 선물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세상 어떤 사람의 발자취든 따라갈 수 있는 부적이었습니다. 그 흔적이 아무리 오래되었더라도, 설령 열두 해가 지났거나 땅에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더라도 효력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알던 유일한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그녀는 그들이 떠난 뒤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왕의 시종으로 들어감
아버지와 아들은 인간 세계를 향해 계속 나아갔습니다. 시간이 흘러 청년은 그의 특별한 재능을 전해 들은 바라나시의 왕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왕은 그에게 도둑과 잃어버린 물건을 오직 발자취만으로 찾아내는 일을 맡겼습니다. 청년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성공으로 섬겼고, 왕은 이 청년의 재능에 한계가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습니다. 왕은 왕실 사제와 함께 스스로 그것을 확인해 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왕좌에서 꾸민 절도
어느 늦은 밤, 왕과 사제는 직접 왕실 보물고에 침입하였습니다. 그들은 가장 훌륭한 보석들을 자기 주머니에 챙겼습니다. 뒤쫓는 자를 따돌리기 위해 온갖 수고를 다했습니다. 뒷걸음질로 걷고, 높은 턱 위로 올라서고, 물을 헤치며 건넜습니다. 마침내 훔친 보석들을 궁궐 가까이의 연못 속에 가라앉히고, 조용히 잠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아침이 되자 털린 보물고가 발견되었습니다. 왕은 모든 이와 똑같은 분노를 가장하여 청년을 불러, 그날이 가기 전에 도둑을 찾아내라고 명하였습니다.
왕좌에 이르는 발자취 추적
보살은 보물고의 문에서부터 바깥을 향해 땅을 읽었습니다. 안뜰과 지붕을 지나며 발자취를 따랐는데, 그 흔적이 빈 허공 속으로 사라져 보이는 곳에서도 따랐고, 마침내 그 연못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보석들을 손상 없이 되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도둑들이 돌아온 길의 희미한 흔적을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다가, 놀랍게도 왕의 침실과 사제의 집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명백한 진실에 앞선 비유들
범인의 이름을 말하라며 대중 앞으로 불려 나온 보살은 망설였습니다. 자신이 섬기던 바로 그 왕을 파멸시키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오직 비유로만 답하였습니다. 일련의 비유 이야기들 속에서, 각각은 피난처였던 것이 바로 그 위험이 되어 버린 어떤 것을 말하였습니다. 술에 취한 무용수가 수많은 이를 살리는 강가에서 빠져 죽었고, 도공은 자신이 판 흙구덩이가 무너져 깔려 죽었습니다. 집의 재물을 구하러 불타는 집에 들어간 사람은 연기와 불길에 갇혔고, 다른 이를 먹여 살리는 음식을 지나치게 먹어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새들은 가지가 서로 비벼져 불이 붙은 나무에서 달아났고, 한 아내는 늙은 시어머니를, 한 아들은 늙은 아버지를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각 비유는 같은 후렴으로 끝났습니다. 피난처였어야 할 것이 오히려 위험 그 자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왕은 그 경고를 알아듣기보다 거듭 분명히 말하라고 재촉하였고, 보살에게는 진실을 감출 여지가 더 이상 남지 않았습니다.
고발과 그 대가
전체 회중 앞에서 보살은 진실을 선언하였습니다. 왕국의 보물고를 털고 자기 나라의 재물을 진흙 속에 숨긴 도둑은 다름 아닌 왕 자신과 그 사제였다는 것입니다. 바라나시의 백성은, 왕국의 신뢰를 지키도록 무엇보다 굳게 맹세한 두 사람이 오히려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그 신뢰를 저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백성은 분노하여 그들에게 들고일어났고, 그날이 저물기 전에 왕도 사제도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답할 자리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진실을 말한 청년이 왕좌에 오르다
왕좌가 갑작스레 비게 되자 백성은 자신들 가운데 목숨을 걸고 진실을 지킨 단 한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보살을 자신들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 뒤 그는 정의로 다스렸으며, 백성이 맡긴 신뢰보다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결코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의 신원 밝히기
부처님께서는 이 가르침을 마치며, 과거 이야기 속의 브라만 아버지를 존자 카사파와 동일시하셨습니다. 그 시대에 카사파 존자는 야차의 사랑에 붙잡힌 포로였습니다. 발자취를 읽는 아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바로 보살 자신이었습니다. 이 가르침과 그 신원을 들은, 의심하던 아버지와 그의 재능 있는 아들인 현재의 두 사람은 바로 그날 첫 번째 성스러운 길의 결실인 수다원의 결실을 얻었습니다.
발자취보다 오래 이어진 가르침
나바니파타의 기즈자바가에 있는 제432번 파다쿠살라마나바 자타카는 날카로운 가르침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진실은 말하기 아무리 위험하더라도 결국에는 분명하게 말해져야 합니다. 지켜야 할 자들이 저버린 신뢰는, 어떤 비유로도 영원히 가려 줄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야차의 슬픈 이별의 선물에서 왕국이 자신의 통치자들에게 치르는 셈에 이르기까지, 이 이야기의 모든 걸음은 같은 점을 강조합니다. 스스로 위험이 되어 버린 수호자는, 그 직분이 마땅히 제공했어야 할 보호처를 잃는다는 것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팔리 경장 쿳다까 니까야의 나바니파타 기즈자바가에 실린 정전 번호 432번입니다.
보살의 어머니는 말머리 야차입니다. 남편에게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왕비가 자신의 맹세에 따라 그러한 모습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녀의 이별 부적은 열두 해가 지난 발자취도, 공중에 남은 흔적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아들과 남편이 달아난 뒤 그녀는 슬픔으로 죽습니다.
왕의 이름을 바로 말하기 전에 보살은 피난처가 위험으로 바뀐 이야기들을 연이어 들려줍니다. 예컨대 자신이 판 흙구덩이에 깔려 죽은 도공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브라만 아버지를 존자 카사파로, 발자취를 읽는 아들을 그 생의 자신으로 밝히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