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살라의 왕이 다스림에 관한 가르침을 받다
기원정사에서 붓다는 코살라의 왕에게 올바른 통치가 실제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말씀하셨다. 왕 자신이 소홀히 다스리면 신하들이 그 본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리고, 왕이 그것을 직접 보기도 전에 고통은 온 나라에 퍼진다고 설명하셨다. 이 뜻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붓다는 훨씬 오래전 전생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버려진 나라
그 옛날 북판찰라국의 캄필라에서 판찰라 왕이 다스렸는데, 그는 악한 길을 따르고 의롭지 않게 통치했으며 신하들도 그를 따랐다. 무거운 세금에 쫓겨 가족들은 숲으로 도망쳤고 마을은 텅 비었다. 남은 이들은 집을 가시덤불로 둘러쳤고, 새벽이면 집을 떠나 있어야 했다. 낮에는 왕의 관리들에게, 밤에는 도적들에게 약탈당하기 때문이었다.
왕의 공양을 받던 신
성 밖에는 흑단나무가 서 있었고, 그 나무에는 왕이 해마다 천 닢의 돈에 해당하는 공양을 올리던 신이 살고 있었다. 이 신이 바로 보살이었다. 왕의 잘못된 통치와 그것이 불러온 파멸을 지켜본 그는, 다른 누구도 왕에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직접 왕을 일깨우기로 결심했다.
한밤중에 읊은 열한 게송
밤이 되자 신은 왕의 침실에 들어와 침상 머리맡에 떠 있었는데, 막 떠오른 태양처럼 빛났다. 그는 왕에게 자신이 흑단나무의 신이며 좋은 가르침을 주러 왔다고 말했다. 게으른 왕은 나라를 잃고 지옥에 태어나며, 그 게으름은 백성들까지 게을러지게 만든다고 했다. 신은 열한 게송으로 정진과 방일, 쇠락, 그리고 게으른 통치자의 운명을 이야기하고, 왕에게 백성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직접 나가 나라를 돌보라고 권했다.
변장하고 자신의 나라를 둘러보다
이튿날 아침 판찰라 왕은 나라를 신하들에게 맡기고, 가문의 사제와 함께 둘 다 변장한 채 동문으로 도성을 나섰다. 처음 만난 사람은 한 노인이었다. 그는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다 자신이 쳐 놓은 울타리의 가시에 찔려 왕을 저주했다. 사제가 왕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하자, 노인은 악한 왕 아래에서는 사람들이 밤에는 도적에게, 낮에는 세리에게 시달리기 때문에 숲으로 도망쳐 집을 가시로 둘러쌌다고 대답했다.
한 늙은 여인은 두 딸을 둔 가난한 어머니였는데, 딸들은 다 자랐으나 아직 시집을 가지 못한 상태였다. 그녀는 잎을 따다가 덤불에서 떨어졌고, 딸들이 시집갈 수 있도록 왕이 죽기를 바랐다. 한 쟁기꾼은 왕의 세리들이 늦춘 식사를 기다리는 사이 소가 쟁기 날에 죽자 왕을 저주했다.
우유 장수는 소에게 차여 왕을 저주했고, 세리들이 칼집을 만들려고 송아지를 죽여 버린 마을 소년들도 왕을 저주했다. 마지막으로, 까마귀들이 개구리를 쪼아 먹던 마른 못의 개구리는 왕이 아들들과의 전투에서 잡아먹히기를 저주했다. 노인의 저주와 개구리의 저주는 진리로 왕의 주의를 이끌던 보살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마침내 귀 기울인 왕
왕과 사제는, 숲 속 개구리 한 마리까지 포함하여 모든 생명이 자신들을 저주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들은 도성으로 돌아와 위대한 존재의 가르침을 따라 의롭게 나라를 다스리고, 보시와 여러 선행에 힘썼다.
붓다의 정체 밝힘
붓다는 코살라의 왕에게 왕은 악한 길을 버리고 의롭게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가르침을 마무리하셨고, 그 자신이 흑단나무의 신이었다고 밝히셨다. 팔리 경전 제520 자타카는 이 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 전한다.
응답할 의무가 없었던 공양
나무의 신에게는 나라의 파멸에 개입할 의무가 없었다. 그는 나무 주변의 나라가 무너지는 동안에도 해마다 왕의 공양을 받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며, 그것이 그의 존재를 규정하는 어떤 규칙도 깨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조용히 암시하는 바는, 마땅치 않은 왕에게서 받은 공경일지라도 그 존경을 받는 이는 그 왕 아래서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배려로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빛에서 보면, 신의 열한 게송은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던 자비의 행위였다.
왕이 직접 들어야 했던 이유
신은 이미 왕에게 그의 무관심이 무엇을 낳고 있는지 분명히 말해 주었고, 왕은 그에 대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듯했다. 뒤따른 여정에서 왕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백성들이 자신을 저주하는 소리를 들었다. 경고는 흘려버릴 수 있으나, 한 노인이 낯선 이의 얼굴 앞에서 왕의 이름을 저주하고, 그 낯선 이가 왕인 줄 모르는 상황은 어떤 경고도 지니지 못하는 무게를 지닌다. 왕이 다시 의롭게 다스리게 된 것은, 진리를 그저 전해 들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직접 들었기 때문이었다.
알고 계셨나요?
간다틴두 자타카(제520화)는 선정과 사회 계약을 다룬 널리 알려진 정치론이다.
나무 신의 열한 게송은, 게으른 왕은 나라를 잃고 지옥에 태어나며 그의 게으름이 백성들까지 게으르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변장한 왕이 신분을 숨기고 나라를 살피는 모티프는 세계 민담의 오래된 선구이다.
늙은 남자, 늙은 여자, 쟁기꾼, 우유 장수, 마을 소년들, 심지어 개구리까지 쏟아내는 여러 원망은 게으른 왕 아래의 농촌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 낸다.
이 이야기는 제16권 띵사니빠따의 열 가지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의로움(법)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를 이끌어야 함을 다시 확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