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생활을 후회한 비구
부처님께서는 사위성 근처의 기원정사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것은 재가의 삶을 버린 것을 후회하게 된 한 비구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보고가 사실인지 묻자, 비구는 사실임을 인정했습니다. 무엇이 그런 마음을 일으켰느냐고 부처님께서 묻자, 비구는 그것이 한 여인의 매력이었다고 솔직히 답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은 한 곰비야가 길가에 흩뿌려 놓은, 치명적인 독이 섞인 꿀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비구 자신의 청에 따라, 자타카 모음집 제366번에 기록된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상인이 오백 대의 수레를 이끌고 떠나다
브라흐마닷타 왕이 바라나시를 다스리던 때, 보살은 한 상인의 집안에 태어났습니다. 장성한 그는 오백 대의 수레에 물건을 싣고 교역을 하러 성을 떠났습니다. 길은 숲을 가로질렀고, 그는 숲의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마부와 고용된 일꾼들을 포함해 대상에 속한 모든 사람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는 위험을 숲에 들어간 뒤가 아니라, 들어가기 전에 그들이 분명히 알기를 원했습니다.
숲 가장자리의 경고
보살은 앞에 놓인 길에 독이 있는 잎과 꽃과 열매가 있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는 낯선 음식은 반드시 먼저 자신에게 묻기 전에는 절대 먹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는 악귀들이 이런 길가에 신선한 쌀과 달콤한 야생 열매를 담은 바구니를 놓아두고, 그 위에 독을 뿌려 두곤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보살의 허락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입에 대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렇게 경고를 마친 뒤, 그는 대상을 이끌고 숲 속으로 나아갔습니다.
야차 곰비야가 덫을 놓다
그 숲의 한가운데 곰비야라는 야차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길가의 한 곳에 잎을 펼쳐 놓고, 그 위에 꿀 조각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 그 꿀 위에 치명적인 독을 덮었습니다. 그는 몸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마치 자신도 꿀을 찾는 듯 나무를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길 위를 어슬렁거렸습니다. 그 꿀을 본 나그네들은, 누군가 공덕을 짓기 위해 그곳에 공양을 놓아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무지한 그들은 그것을 먹었고, 그렇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뒤에 악귀들이 와서 그들의 시신을 먹어 치웠습니다.
같은 대상 안의 탐욕과 지혜
보살의 대상이 그 자리에 이르자, 사람들은 같은 유혹적인 광경을 보았습니다. 본래 탐욕스러운 몇몇은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꿀을 먹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지혜로웠습니다. 그들은 “먹기 전에 보살에게 여쭈어 보겠다”고 말하고, 맛보지 않은 채 꿀을 손에 든 채로 서 있었습니다. 이 순간이야말로 이야기 전체가 돌아가는 지점입니다. 같은 경고가 모두에게 주어졌지만, 그것을 자신의 손을 다스리게 둔 이는 일부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나서다
보살은 지혜로운 이들이 쥐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내던지게 했습니다. 이미 몫 전부를 먹은 이들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절반만 먹은 이들은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보살은 그들에게 구토제를 주었고, 토해 낸 뒤에는 네 가지 단 음식을 먹였습니다. 그의 기지와 힘으로 그들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경전은 두 가지 결과를 극적인 표현 없이 기록합니다. 어떤 이는 죽었고, 어떤 이는 살아났으며, 어떤 이는 전혀 먹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무사히 건너 돌아오다
보살은 대상을 숲을 지나 무사히 목적지로 이끌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물건을 팔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게송으로 이야기를 맺으셨습니다. 곰비야는 모양과 맛과 냄새가 꿀과 같은 독을 놓았다고 합니다. 그것을 꿀인 줄 알고 먹은 모든 이는 스스로의 탐욕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고, 지혜롭게 삼간 이들은 고통에서 벗어나 평온하게 머물렀다고 합니다. 이어서 게송은 그 비구의 고뇌에 대한 비유를 직접 이야기합니다. 감각적 욕망은 사람들을 위해 놓인 독 미끼와 같고, 마음의 바람은 흔히 그 자신을 파멸로 배신해 왔다고 말입니다. 자신을 얽매는 허물을 아무리 약하더라도 내려놓는 이들은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난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전생의 인연을 밝히시다
이 게송을 말씀하신 뒤, 부처님께서는 사성제를 설하셨습니다. 사성제의 설법이 끝나자, 출가를 후회하였던 그 비구는 예류과, 곧 수다원 과위를 얻었습니다. 이는 깨달음의 첫 단계로서 결국의 해탈을 보장하는 과위입니다. 그런 다음 부처님께서는 인연의 주인공을 밝히셨습니다. 그때의 그 상인이 바로 자신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숲길을 넘어 살아남은 가르침
곰비야 자타카는 자타카 모음집의 제366번이며, 그 가르침은 단순하고 실천적입니다. 그 비구는 달콤해 보이는 무언가에 마음이 끌렸고, 부처님께서는 유혹이 다시 찾아올 때 떠올릴 수 있는 하나의 비유를 주셨습니다. 욕망은 꿀처럼 보이고 꿀처럼 향기를 풍기면서도, 그 속에 독을 품고 있을 수 있습니다. 대상의 지도자는 음식이 싫어서 사람들이 먹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길이 어떤 곳인지 알았고, 사람들에게 기다리고 확인하라고 청했습니다. 지혜로운 이들이 멈추어 선 덕분에 그들의 목숨이 구해졌고, 반쯤 독에 노출된 이들조차 유능한 이가 곁에 있었기에 구출될 수 있었습니다. 재가의 삶을 그리워하는 비구에게 이 이야기는 같은 두 가지 보호책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행동하기 전에 멈추어 지혜로운 스승께 여쭙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이 때로는 우리가 미끼를 물 때 이익을 얻는 누군가가 놓은 덫일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굼비야 자타카는 쿳다카 니카야의 자타카 모음에서 제366번이며, 팔리성전협회 판본의 제3권에 실려 있다.
부처님께서는 제따 숲에서 한 여인의 매력 때문에 출가를 후회하던 수행승에게 이 이야기를 설하셨다.
브라흐마닷타 왕의 치세에 바라나시를 떠나 오백 대의 수레를 이끌던 상인이 바로 보살이었다.
야차 굼비야는 숲 한가운데에 독을 섞은 꿀을 놓아두고, 근처 나무를 두드리며 꿀을 찾는 척하였다.
반만 먹은 이들에게는 토제를 먹여 토하게 한 뒤 단 음식을 주어 회복시켰다. 물러서려던 수행승은 수다원과를 얻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