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arat Devotion
Embroidered artwork for 로하쿰비 자타카: 지옥에서 들려온 네 음절: Embroidered Buddha seated in meditation on a pink lotus, with a golden dharma wheel and a white stupa in the mountains

로하쿰비 자타카

지옥에서 들려온 네 음절

네 번의 괴이한 비명에 공포에 질린 왕은, 한 수행자가 그 소리가 무쇠 솥 지옥에서 끓고 있는 음행자들의 미완의 울부짖음이라고 밝혀준 덕분에 대규모 제사를 면하게 된다.

밤을 두려워한 왕

기원정사에서 코살라의 빠세나디 왕은 어느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때 어둠을 가르며 네 가지 끔찍한 울부짖음이 들려왔습니다. “두!”, “사!”, “나!”, “소!” 놀란 왕은 날이 밝자 궁정의 바라문들을 불렀고, 그들은 그 울부짖음이 왕국과 재산, 그리고 왕의 목숨을 위협하는 징조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재앙은, 도살 기둥에 묶인 짐승과 포로들을 네 갈래로 크게 바치는 제사를 드려야만 막을 수 있다고 그들은 주장하였습니다.

왕비의 조언

왕이 제사를 준비하라고 명하기 전에, 말리까 왕비는 바라문들만 믿지 말고 부처님께 여쭈어 보라고 권하였습니다. 빠세나디는 기원정사의 부처님께 가서, 자신이 들은 네 울부짖음을 그대로 설명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어떤 존재들이 그저 괴로움에 못 이겨 울부짖었을 뿐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이 같은 두려움을 전에 한 왕이 어떻게 마주했는지 보이시려고 옛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히말라야의 수행자

그 옛 시대, 브라흐마닷타가 바라나시를 다스리던 때, 보살은 세속의 즐거움을 버리고 히말라야에서 큰 힘을 지닌 수행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때때로 왕이 쓰는 궁원에 황금빛 형상처럼 나타나곤 하였습니다. 그 시절의 왕은 밤에 같은 네 울부짖음을 들었고, 훗날 빠세나디가 그렇게 하듯 궁정의 사제에게 설명을 구하였습니다.

사제의 요구와 제자의 질문

왕실 사제는, 울부짖음이 예고한 재난은 오직 네 갈래로 짐승을 바치는 제사만이 막을 수 있다고 선언하였고, 왕은 그 제물들을 도살 기둥에 묶어 칼날을 기다리게 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사제의 제자들 가운데 한 젊은 제자는 이 답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스승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을 자신의 안전을 위해 죽인 이에게 행복이 찾아올 수 있다고 베다 자체가 가르치느냐고. 스승은 그를 만족시킬 답을 내놓지 못했고, 질문을 그냥 묵살해 버렸습니다.

수행자를 찾아가다

그 문제를 그대로 둘 수 없었던 젊은 제자는 왕의 정원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보살이 된 황금빛 수행자를 만났습니다. 사제가 모르는 것을 알 수도 있는 이라고 알아본 젊은이는, 왕을 설득하여 당장 제사를 거두고, 그 무서운 울부짖음을 직접 설명하도록 수행자를 왕좌 앞으로 모셔 오게 하였습니다.

네 가마솥의 진실

왕과 궁정 앞에서 보살은, 그 울부짖음이 살아 있는 이들을 위협하는 징조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바라나시 근처의 네 왕자가 옛날 다른 이들의 엄중히 지켜지던 아내들과 간통을 저질렀고, 그 죄로 죽은 뒤 땅 아래 깊은 곳, 고통의 세계인 로하쿰비 지옥에서 쇳물이 끓는 네 개의 쇠 가마솥에 태어났다고 하였습니다. 삼만 년 동안 각자는 가마솥 바닥에 가라앉았다가 끓는 쇳물을 뚫고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러다 이제야 각자가 가장자리에 닿을 만큼 오래 떠올라, 애통의 게송 하나를 시작할 수 있었는데, 타오르는 거품이 다시 그를 끌어내리기 전에 첫 음절만을 겨우 낼 수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가마솥들이 마치지 못한 게송

보살은 이어서, 고통받는 각 목소리가 끝내지 못했던 것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두”는 자신들이 재산의 응당한 몫을 나누지 않았고 악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는 게송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래전에 떠나 버린 기쁨 속에서는 안전한 피난처를 찾지 못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사”는 벗어날 길이 없는 고통, 셀 수 없는 세월 동안 끝날 기미 없이 이어지는 괴로움을 한탄하는 게송을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땅에서 저지른 악행들의 대가를 이제 홀로 치러야 하므로, 그들의 고통에는 끝이 없다는 고백을 시작하였습니다. “소”는 마침내 그곳을 벗어나게 될 때, 각자가 다시 사람의 몸을 얻어 덕을 쌓아 가치 있는 많은 일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지막 희망을 시작하였습니다.

왕의 안도와 참회

울부짖음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전부 들은 왕은, 왕좌나 왕국을 위협하는 재난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묶여 있던 포로와 짐승들을 모두 즉시 풀어 주라고 명하였고, 도살 기둥을 무너뜨리게 하였으며, 그날부터 보시와 평범한 덕의 다섯 계율을 향해 마음을 돌렸습니다.

부처님의 밝히심

부처님께서는 빠세나디를 위해 이야기 속 인물들을 밝히시며 가르침을 맺으셨습니다. 스승의 살생에 대한 정당화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젊은 제자는, 그 먼 생에서 사리불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울부짖음 뒤에 숨은 진실을 드러낸 수행자는 부처님 자신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제자의 질문이 수행자의 답만큼 중요한 까닭

보살의 설명이 이야기의 전부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수수께끼를 풀고 수백 명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그의 게송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야기에서 그에게 이르는 어떤 길도, 권위자의 편리한 답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제자의 용기 없이는 열리지 않습니다. 그 젊은 제자에게는 특별한 지혜도, 외울 게송도, 지옥을 들여다볼 힘도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스승이 불편해하는 질문을 던지려는 의지, 그리고 스승이 그를 물리친 뒤에도 계속 찾으려는 의지가 있었을 뿐입니다. 자타카는 이 찾음을, 그것을 마침내 답한 지혜와 떨어질 수 없는, 그 자체의 용기로 높이 기립니다.

울부짖음이 아니라 두려움이 참된 위험이다

이 자타카는 네 울부짖음과, 바라문들이 그 둘레에 지어낸 재난 사이의 조용한 차이를 그립니다. 울부짖음 자체는 실제였습니다. 고통받는 존재들의 참된 괴로움이 산 자들의 세계에 희미하게나마 닿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듣는 왕에게 어떤 위협도 주지 않았습니다. 이야기 속의 참된 위험은 밤의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가 만들어 낸 두려움이었고, 그 두려움을 실제의 필요가 아니라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제사로 바꾸려는 사익을 좇는 조언자들의 준비였습니다. 보살이 옛 바라나시 왕의 궁정에서 드러냈던 것과 같은 패턴을, 부처님께서는 빠세나디 자신의 궁정에서 드러내셨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팔리 대장경 자타카 제314화; 사구게편 전체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고 극적인 교훈을 지닌 명작.

‘두-사-나-소’ 네 음절은 사음의 참혹한 과보를 경계하는 남방 상좌부 불교 설법의 대표적 기억 장치가 되었습니다.

잔혹한 동물 살해와 피의 제사 의식을 완전히 철폐함으로써 불살생(아힘사) 정신을 드높였습니다.

쇳물이 끓어오르는 무쇠 솥 지옥(로하쿰비 지옥)의 우주론적 실상을 상세히 서술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기원정사에서 한밤중의 괴이한 소리에 두려움에 떨던 코살라국의 파세나디 왕에게 이 본생담을 들려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