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arat Devotion
Embroidered artwork for 로마함사 자타카: 자기 학대의 고행을 시험한 수행자: Embroidered Buddha seated in meditation on a pink lotus, with a golden dharma wheel and a white stupa in the mountains

로마함사 자타카

자기 학대의 고행을 시험한 수행자

비구 수낙캇따의 비방에 답하여, 부처님은 과거 생에 나체의 아지비카 수행자였던 자신을 회상하십니다. 극단적인 고행은 해탈이 아니라 임종 자리에서 지옥을 보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전직 비구가 스승을 등지다

부처님께서는 베살리 근처의 파티카라마에 머무시며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계기는 승복을 벗고 크샤트리야 출신 코라의 고행자 무리에 들어간 비구 수낙캇따의 행실이었습니다. 승단을 떠난 수낙캇따는, 부처님에게는 초인적인 공덕이 없으며 그분의 가르침은 고통의 소멸에 이르지 못한다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장로 사리풋타가 이 비방을 아뢰자, 부처님은 노여움으로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당신의 초월적 신통을 보이시고, 이어 구십일 겁 전 당신의 전생에서 있었던 한 사건을 들려주셨습니다. 수낙캇따가 지금 찬탄하고 있는 그 길을 당신께서 이미 얼마나 철저히 시험하고 버리셨는지를 분명히 보이기 위함이셨습니다.

고행을 한계까지 시험하다

최후의 생에 이르기까지 아득히 전, 보살은 극단적인 신체의 고행이 정말로 마음을 맑힐 수 있는지 스스로 확인하고자 뜻을 세웠습니다. 보살은 충분한 육체의 고통으로 괴로움을 태워 없앨 수 있다고 가르치던 자기부정의 학파, 아지비카의 나체 수행자로 출가하였습니다. 이 수행을 어중간하게 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기로 결심하여, 모든 편안함과 모든 벗으로부터 끊어진 채 길 없는 밀림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뀌는 계절을 견디다

아따카라 불리는 혹한의 보름 동안, 서리가 대지를 하얗게 덮고 바람은 칼날처럼 살을 베었습니다. 그럼에도 보살은 밤새 노지에 머물렀고, 해가 뜬 뒤에야 덤불의 엷은 그늘을 찾았습니다. 한여름의 뜨거운 달에는 가지 위의 잎이 시들고 돌마저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달아올랐는데, 그때는 순서를 뒤집어 작열하는 한낮의 볕 속에 몸을 내맡기고, 밤이 되어서야 그늘로 물러났습니다. 계절마다 보살은 더 견디기 어려운 쪽을 골라 스스로를 그 안에 두었습니다.

가장 소박하고 즐겁지 않은 음식

음식이 주는 모든 위안을 벗겨내기 위해 보살은 즐겁게 여겨질 만한 음식을 모두 거부하였습니다. 황야와 아지비카의 계율이 허락하는 남은 음식과 거친 음식만으로 몸을 지탱하였습니다. 후대의 전승은 이를 구도자들이 시도한 가장 가혹한 고행 가운데 하나로 기억합니다. 씻지 않은 사지에 먼지와 때가 엉겨 붙어 피부는 오래되어 풍화된 나무껍질처럼 보였습니다. 보살은 무덤가를 거처로 삼아, 죽은 이의 뼈가 흩어진 곳에 머리를 누이고 쉬었습니다.

노여움 없이 모욕을 받다

무덤가에서 이 더럽고 말없는 형상을 마주친 마을 사람들과 목동 아이들은 때때로 그를 조롱하고 노골적으로 업신여겼습니다. 부처님께서 훗날 《대사자후경》에서 깨달음 이전의 이 고행들을 스스로 회상하신 기록에도 같은 내용이 전합니다. 온갖 모욕 속에서도 보살의 내면에는 분노나 원망의 가장 작은 물결조차 일지 않았다고 이 이야기는 전합니다.

교만 없이 존경을 받다

다른 때에는 그의 초인적인 인내에 감탄한 행인들이 꽃다발과 향, 음식을 들고 와서 성자로 여겨 그 앞에 합장하고 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공경은 앞선 멸시만큼이나 그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는 숭경과 모욕을 똑같이 흔들림 없는 고요함으로 받아들였고, 칭찬이든 경멸이든 그가 완성하고자 세운 고요를 흐트러뜨리도록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본 환상

수년에 걸친 이 가차 없는 수행은 그의 몸을 끝으로 닳아 없어지게 하였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지자 보살은 그가 구하던 해방을 얻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 생이 끝나갈 무렵, 쓸모없는 자기 학대로 인간의 생을 허비한 자를 기다리는 지옥의 고통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죽음을 앞둔 맑은 깨달음의 순간에 보살은 마침내 이해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몸을 벌하는 것으로는 갈애를 태워 없앨 수 없고 마음을 정화할 수도 없으며, 그가 걸어온 고행의 전 과정이 잘못된 길이었다는 것을.

힘겹게 얻은 미혹을 놓아 버리다

오랫동안 순전히 고집스러운 교만 때문에 유지해 온 고행에 매달리는 대신, 보살은 그것이 잘못된 견해임을 알아차린 바로 그 순간 그 그릇된 견해를 내려놓았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평생 품어 온 잘못된 확신을 버린 까닭에, 그는 자신이 잠시 본 그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천신(데바)의 세계에 태어났습니다. 모욕과 명예 모두에 대해 그가 지녔던 평정은, 그가 택한 방법이 그를 저버린 뒤에도 그를 떠받쳐 주었습니다.

부처님이 자신을 밝히시다

이 오래된 이야기를 남김없이 전한 뒤, 부처님은 회중에게 구십일 겁 전의 그 나체 수행자가 바로 자신이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것은 《로마함사 자타카》 제94화에 밝혀져 있습니다. 보리수 아래에서 최후의 깨달음을 얻기 훨씬 이전에, 부처님은 스스로 자기 학대만으로는 아무 데도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확인하셨던 것입니다. 수낙캇따의 주장, 즉 부처님의 길로는 고통을 끝낼 수 없다는 말에 대해, 부처님은 논쟁이 아니라 당신이 직접 검증한 역사로 답하셨습니다. 당신은 수낙캇따가 지금 찬탄하고 있는 극단의 길을 실제로 걸었고, 그것이 텅 빈 길임을 발견하셨던 것입니다.

구십일 겁을 넘어 이어진 가르침

로마함사 자타카라는 이름은, 그 안에 묘사된 고행의 혹독함 때문에 “털이 곤두서는”이라는 뜻을 지니며, 고통을 진보로 착각하는 것에 대한 경전 속 가장 엄한 경고 가운데 하나로 서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잔인한 자의 멸시도, 독실한 자의 찬탄도 고요한 마음을 흔들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참된 해탈의 과제는 몸을 얼마나 괴롭힐 수 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고통을 넘어 이끄는지,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평정심으로 분명히 보는 데 있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로마함사 자타카는 정전의 제94화로, 베살리 근처의 파티카라마에서 설해졌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승단을 떠나 당신을 비방한 비구 수낙캇따에게 답하시기 위해 이 이야기를 설하셨습니다.

그 전생, 구십일 겁 전에 보살은 나체의 아지비카 수행자로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보살은 지옥의 환영을 보았고, 그 고행이 잘못된 길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보살은 천신(데바)의 세계에 태어났으며, 이 일화는 부처님께서 《대사자후경》에서 밝히신 성도 이전의 고행과 짝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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