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정사에서 기억된 말썽꾼
부처님께서는 빨리 성전 자타카 모음의 제173번인 마깟타 자타카를, 비구들 사이에서 속임수를 쓰는 버릇으로 알려진 한 비구 때문에 기원정사에서 들려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대중에게, 그 사람이 말썽꾼으로 드러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오랜 과거 생에 원숭이로 태어났을 때에도, 따뜻한 불을 쬐기 위해 바로 그와 같은 종류의 속임수를 썼다는 것입니다.
히말라야의 아버지와 아들
브라흐마닷타가 바라나시를 다스리던 시절, 보살은 전생에서 바라문 가문에 태어나셨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그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히말라야 숲으로 들어가 은둔자로 살았고, 그곳 암자의 소박한 규율 속에서 아들을 길렀습니다.
비를 맞고 떨던 원숭이
우기 동안, 아버지와 아들은 오두막 안에서 불을 쬐며 몸을 녹이고 있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추위와 쏟아지는 빗속에 갇힌 원숭이 한 마리가 떨면서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았고, 지금 모습으로는 결코 안으로 들어오도록 허락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죽은 수행자의 옷가지
가까운 곳에는 얼마 전 죽은 한 수행자의 시신이 누워 있었고, 그의 물건들은 그가 두고 간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나무껍질 옷, 엮은 바구니, 그리고 굽은 지팡이였습니다. 원숭이는 죽은 사람의 나무껍질 옷을 입고, 바구니를 집어 들고, 지팡이를 쥐었습니다. 폭풍을 피해 잠자리를 구하는 떠돌이 성자인 척하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암자 문 앞에서 기다리다
그렇게 차려입은 원숭이는 암자로 가서 입구 가까이 섰습니다. 눈에 띌 만큼 가까이, 그러나 허락 없이 그들의 불 곁에 들어가기를 삼갈 만큼 예의 바른 낯선 나그네처럼 보일 만큼의 거리를 두었습니다.
아들의 자비로운 간청
아들이 먼저 그를 발견하였습니다. 추위 속에서 고통받는 늙은이라고 여긴 아들은 마음이 움직여, 게송으로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밖에 있는 야자나무 곁에 웅크린 불쌍한 노인을 보시라고, 오두막에 한 사람 더 들일 자리는 충분하니 그에게 잠자리를 나누어 주자고 청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날카로운 눈
보살은 아들에게 대답하기 전에, 그 형상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참된 바라문이라면 결코 그런 얼굴을 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방문객은 사실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이니, 멀리서 보기에 빌린 옷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안으로 들일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타는 나뭇가지로 쫓아내다
속임수가 그토록 분명하게 간파되자, 원숭이는 더 머물러서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보살은 그를 암자에서 쫓아냈고, 겁에 질린 짐승은 젖은 숲으로 도망쳐 돌아가며, 죽은 수행자의 나무껍질 옷과 바구니와 지팡이를 뒤에 남겨 두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밝히신 전생의 인연
이야기를 마치신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을 위해 등장인물들을 밝히셨습니다. 불가에 자리를 얻으려고 죽은 사람의 옷을 걸쳤던 속임수 원숭이는, 지금 그들 가운데 살고 있는 바로 그 말썽꾼 비구였습니다. 낯선 이의 편안함을 간청한 자비로운 소년은 그 전생의 부처님 아들, 라훌라였습니다. 그 변장을 한눈에 꿰뚫어 본 아버지는 부처님 자신이었습니다.
폭풍을 넘어 전해진 가르침
지금 말썽꾼 비구의 속임수를, 죽은 수행자의 옷을 단지 따뜻함을 위해 빌려 입었던 옛 원숭이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여 주심으로써, 부처님께서는 이런 기만이 새로운 허물이 아니라 오래된 습관임을 비구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보이고 이름 붙여지기 전까지는 여러 생에 걸쳐 이어질 수 있는 습관입니다. 마깟타 자타카는 그 가르침을 단순하고 감상에 치우치지 않게 전합니다. 친절은 진정한 필요에 베풀 가치가 있지만, 그것은 분명한 통찰에 이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린 가사는 거룩함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결코 지니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소년의 자비는 이 이야기가 가리키는 허물이 아니었습니다. 허물은 그 자비를 이용하려고 죽은 사람의 옷을 걸쳐 입은 자에게만 있었습니다. 그날 밤 그 작은 암자가 속지 않은 것은 집안의 자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흔들리지 않는 분별 덕분이었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분류: 빠알리 자타카 모음에 속하는 제173화 이야기이다.
보살은 아내를 잃은 바라문으로, 어린 아들과 함께 히말라야에서 선인으로 살아간다. 손님을 대접하는 재가 주인이 아니다.
원숭이는 최근에 입적한 수행자의 나무껍질 옷과 풀바구니, 굽은 지팡이를 빌려 변장한다.
부처님은 이야기 속 인물을 밝히시며, 간청한 아들이 전생의 라훌라, 곧 부처님 자신의 아들이었다고 설하셨다.
보살은 얼굴만 보고 원숭이를 알아보았으며, 참된 바라문에게는 그런 생김새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