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도 늦출 수밖에 없었던 자비
제타 숲에서 부처님은 자신의 외가 친척을 향해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는 한 왕자의 길목에 조용히 나타나려고 세 번이나 애쓰셨습니다. 부처님의 현현만으로도 일이 비켜 갈 수 있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다가오는 일의 뒤에 오래된 업의 빚이 있어서 단순한 바람만으로는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부처님이 네 번째로 나타나지 않으셨을 때,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훨씬 오래전 전생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분노가 일으키려던 모든 일을 되돌릴 수는 없더라도,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어떤 희생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왕의 이룰 수 없는 궁궐
옛날 바라나시의 브라흐마닷타 왕은 단 하나의 기둥 위에 세워진 궁궐을 짓고 싶은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기둥으로 떠받쳐진 어떤 대전보다도 웅장해야 했습니다. 왕은 나라 곳곳에 장인들을 보내어 그 하나의 기둥이 될 만한 나무를 찾게 하였으나, 그들이 찾아낸 가장 큰 나무들은 수레가 닿을 수 없는 깊은 산속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육만 년 동안 받들어진 나무
가까운 곳을 다시 살피던 장인들은 왕실 동산에서 답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왕실 동산에 서 있는, 육만 년 동안 신성하게 여겨져 손대지 않고 보존되어 온 거대한 사라나무였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도성의 백성들, 그리고 브라흐마닷타 이전에 나라를 다스린 모든 왕이 이 나무를 받들어 왔습니다. 나무 안에는 힘센 나무의 정령이 머물렀고, 그 둘레에는 넓은 그늘 아래 셀 수 없이 많은 어린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그 작은 나무마다 또 저마다의 권속 정령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보살은 이 거대한 나무의 정령으로 태어나, 그 그늘에서 자라는 모든 작은 생명의 주인이었습니다.
칠 일의 예법과 경고
장인들은 큰 나무를 베기 전에 관례대로 의식을 치렀고, 칠 일 안에 도끼가 떨어질 것이며 그 나무에 깃든 정령은 누구든 다른 곳으로 안전하게 떠나야 한다고 알렸습니다. 사라나무의 정령은 그 뜻을 곧바로 알아들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줄기 둘레에 빽빽이 모여 자란 어린 나무 하나하나에게도 해당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나무가 쓰러지며 가하는 무게 앞에서 어린 나무들은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침전에서의 간청
그날 밤, 정령은 빛나는 모습으로 왕의 침상 곁에 나타나, 선 채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놀란 왕이 이토록 깊은 슬픔을 안고 자신을 찾아온 이가 누구냐고 묻자, 정령은 왕의 신하들이 베려고 하는 나무가 바로 자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육만 년 동안 받들어져 왔고, 지금까지 어느 통치자에게도 해를 입은 적이 없는 나무라고 했습니다. 나무의 긴 역사에 마음이 움직인 왕은 결국 나무를 살려 주겠다고 하였고, 나무의 목재를 평범한 재목으로 쪼개지 않고, 왕이 원하던 단 하나의 기둥으로만 쓰되 하나의 온전한 형체로 보존하겠다고 했습니다.
자비보다 이상한 청
정령은 이것이 겉보기처럼 자비라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단 하나의 기둥이 된다 하더라도 나무는 여전히 통째로 쓰러져 그 길목의 어린 나무들을 모두 짓이겨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령은 왕에게 훨씬 가혹하게 들리는 청을 했습니다. 단번에 베지 말고, 가지 하나하나를 차례로 베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우듬지를 자르고, 다음으로 줄기를 자르며, 마지막으로 뿌리를 캐내 달라고 했습니다.
더 큰 고통을 택한 것이 자비인 까닭
왕은 어떤 존재든 빠른 죽음을 두고 느리고 더 고통스러운 죽음을 택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 점을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정령은 대답했습니다. 자신의 권속이자 그늘 아래 몸을 기대고 사는 셀 수 없이 많은 어린 나무들은, 자신이 천천히, 그리고 그들을 살릴 수 있을 만큼 작은 조각으로 쓰러진다면 번성할 것이라고요. 만약 자신이 통째로 한꺼번에 쓰러진다면 그들은 모두 가루가 되어 사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은 그 긴 고통을 몸소 짊어지기를 청한다고, 그래야 자기 둘레에 모인 생명들이 아무런 고통도 겪지 않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왕의 마음이 바뀌다
이 말을 들은 브라흐마닷타는 자신의 계획을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속을 향한 이토록 깊은 헌신은 한 그루 나무를 살려 주는 것 이상의 값어치가 있다고 정령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도끼에 대한 모든 두려움에서 나무를 풀어 주었고, 앞으로 그 뒤를 잇는 어떤 통치자도 사라나무 숲을 다시는 괴롭히지 않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는 이 모든 일을 불러일으킨 야심에서 돌아서, 너그러움과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한 보살핌으로 기억되는 치세를 펼쳤고, 때가 되자 그 덕으로 하늘에 올랐다고 전해집니다.
부처님께서 밝히신 인연
부처님은 이야기를 마무리하시며 그 안의 인물들을 비구들에게 하나하나 밝혀 주셨습니다. 아난다는 그 시대의 왕이었고, 부처님 앞에 모인 비구들은 어린 나무들에 깃들어 있던 젊은 나무의 정령들이었으며, 부처님 자신은 큰 사라나무에 머무는 천신들의 왕 바다살라였다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빨리 경전에 제465번 자타카로 기록되어 있으며, 부처님의 친족이 한 위험에 직면했을 때 부처님의 현존만으로는 그 위험을 늦출 수는 있어도 결코 없앨 수는 없었던 그 시점에 이렇게 전해졌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받다살라 자타카』는 사심 없는 자애와 자연 보호를 기리는 초기 불교의 생태 우화입니다.
사라나무는 불교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겨지는 나무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탄생하시고 반열반에 드신 나무입니다.
어린 생명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세 토막으로 잘라 달라 청한 보살의 행동은 짜가 바라밀, 즉 버림의 바라밀이 지극히 완성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둥 하나로 궁궐을 지으려 했던 왕의 오만은 자연을 파괴하면서까지 부귀를 과시하려는 세속 권력의 부질없는 탐욕을 풍자합니다.
나무를 베기 전 꽃과 향을 바치고 칠 일 전에 정중히 허락을 구하던 고대 인도의 수목 숭배 풍습과, 나무 둘레를 오른쪽으로 돌며 보호의 경계를 긋던 의식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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