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에게 가한 왕의 잔혹함
부처님께서 들려주신 이 이야기는 빨리 경전에 전하는 『본생경』 제497화로, 이십집 마탕가품에 속합니다. 코삼비의 왕 우데나는 궁중 정원에서 기생들이 장로 핀돌라 바라드바자의 주위에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질투의 격정에 사로잡혀, 그 수행자의 몸에 붉은 개미를 쏟아붓도록 명했습니다. 장로는 기원정사에 계신 부처님께 피신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데나가 성자에게 이와 같은 모욕을 가한 것이 처음이 아님을 밝히시고, 이러한 행태의 뿌리를 보여 주기 위해 전생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마탕가라는 이름의 천민
옛날 바라나시에서 보살은 성 밖 찬달라(천민) 마을에 태어나 마탕가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비천한 출신이었으나 지혜와 계행, 그리고 온화한 자기 절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스스로를 높다고 여기는 이들조차 미칠 수 없는 품성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상인의 오만한 딸 딧타망갈리카가 성문 근처에서 마탕가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천민의 모습 자체를 불길한 징조로 여기고 향수로 눈을 씻은 뒤 되돌아갔습니다. 나들이를 망친 시종들은 분노하여 마탕가를 의식을 잃을 때까지 때리고 길가에 버려두었습니다.
고요 속에서 세운 서원
정신을 되찾은 마탕가는 자신을 때린 자들에게 노여움을 품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구타를 불러온 출신에 대한 편견의 미망에는 분명한 답이 필요하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상인의 집으로 가 문지방에 몸을 눕히고, 딧타망갈리카를 아내로 주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레 동안 그는 먼지 속에 꼼짝 않고 누워 있었고, 천민이 문 앞에서 죽는 불명예를 두려워한 상인의 가족은 마침내 뜻을 굽혀 딸을 그에게 내주었습니다.
빛 속의 브라흐마
마탕가는 그녀를 평범한 아내로 취하지 않고, 부드럽게 숲으로 데려간 뒤 곧바로 수행자의 삶에 들어갔습니다. 이레 안에 그는 깊은 선정으로 신통력을 얻었습니다. 그는 그녀 앞에 브라흐마 신의 완전한 위엄으로 나타나, 찬란한 빛으로 보름달의 원반을 꿰뚫었으며, 그녀가 낳을 아들이 가장 높은 존경을 받게 되리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출산을 위해 지은 누각에서 태어난 그들의 아들은 그 건물의 이름을 따 만다비야라 불렸습니다.
아들의 오만한 보시
만다비야는 부와 특권 속에서 자랐고, 열여섯 살에 이르러서는 매일 만육천 명의 브라만에게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는 오직 고귀한 가문의 사람들만 후원한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어느 날 마탕가 자신이 수행자의 해진 옷을 입고 보시를 구하러 왔을 때, 만다비야는 자신의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거나 알아보려 하지 않았고, 그를 보시를 받을 자격이 없는 비천한 존재라고 모욕하였습니다.
벌과 회복
참된 성자에게 보인 이러한 멸시에 노여워한 도시의 수호신들은 만다비야의 목을 뒤로 비틀었고, 그가 공양하던 브라만들을 쓰러뜨렸습니다. 만다비야는 몸이 굳어 죽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딧타망갈리카는 아들이 이러한 상태에 놓인 것을 보고,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이는 마탕가뿐임을 깨달아 슬픔 속에 그를 찾아 나섰습니다. 깊이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도, 마탕가는 노여움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들을 회복시키도록 자신의 쌀죽 일부를 그녀에게 주었고, 그 기회를 빌려 보시는 출신으로 뽑힌 이들이 아니라 덕과 지혜를 갖춘 이에게 바르게 돌아가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부처님의 밝히심
가르침을 마치면서 부처님께서는 두 생에 걸친 등장인물들을 밝히셨습니다. 우데나는 만다비야였으니, 해진 옷을 입은 수행자에 대한 멸시로 스스로에게 신들의 벌을 불러들였던 오만한 아들이었습니다. 부처님 자신은 천민 성자 마탕가였으니, 그의 덕과 인내와 지혜는 그가 태어난 계급의 우연에 전혀 얽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가정을 넘어선 셈
이 본생담은 만다비야의 회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만다비야가 공양하던 만육천 명의 브라만은, 천민의 보시로 닿은 음식을 알지 못한 채 함께 나누어 먹었다는 이유로 불명예 속에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먼 메쨔 왕국으로 달아났고, 그곳에서 통치자에게 마탕가가 걸식하러 왔을 때 사기꾼이었다고 설득하였습니다. 왕의 신하들은 성자가 식사하는 동안 그를 죽였습니다. 만다비야의 작은 멸시에 이미 응답했던 수호신들은, 참으로 덕 있는 성자를 살해한 일에 대해서는 훨씬 더 가혹한 셈으로 응답하여 메쨔 왕국 전체가 멸망하였습니다. 이 본생담은 모욕에 대한 목의 비틀림과 살해에 대한 왕국 전체의 멸망이라는 두 벌을 죄에 비례하는 것으로 두며, 같은 무게의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불교 주석 전통은 이 구분을, 이야기가 덕에 대한 멸시를 획일적인 하나의 죄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로 다루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것으로 읽습니다.
정의를 요구하는 인욕
마탕가 자신의 행실은 이야기 전반에 걸쳐 개인적인 복수로부터 뚜렷이 자유롭습니다. 그는 가해자들을 용서하고, 자신을 모욕한 아들을 벌이 아니라 자신의 음식으로 치유합니다. 만다비야를 저주하지도 않으며, 신들이 그를 벌했다는 사실을 기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본생담은 이 인욕이, 참된 덕에 대한 멸시가 충분히 멀리 나아갔을 때 다른 곳에서 결과가 뒤따르는 것과 양립할 수 없다고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성자 자신의 뜻을 넘어서는 힘을 통해 나타납니다. 이야기는 두 가지 진실을 그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지 않은 채 함께 간직합니다. 성자의 마음은 원망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으나, 그가 구현하는 더 넓은 도덕의 질서는 그가 개인적으로 결코 구하지 않았던 응답을 여전히 요구합니다.
알고 계셨나요?
마탕가 자타카는 『본생경』 이십집(비사티니파타) 마탕가품에 실린 제497화입니다. 코삼비의 왕 우데나가 질투의 분노에 휩싸여 핀돌라 바라드바자 장로의 몸에 붉은 개미를 쏟아붓도록 명한 일이 이야기의 발단이 됩니다.
천민으로 태어난 마탕가는 미천한 출신 탓에 구타를 당한 뒤, 장자의 집 문 앞에서 칠 일간 단식하여 오만한 장자의 딸 딧타망갈리카를 아내로 얻었습니다.
수행자가 된 마탕가는 보름달의 빛을 뚫고 나타난 범천의 모습으로 아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두 사람의 아들 만다비야라는 이름은, 출산을 위해 지은 누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재물에 취한 만다비야는 걸식하러 온 친아버지 마탕가를 자격 없는 천민이라 모욕하였고, 그 결과 도시의 수호신들에 의해 목이 뒤로 비틀리는 벌을 받았습니다.
마탕가는 분노 대신 자신이 끓인 쌀죽으로 아들을 소생시켰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데나가 곧 만다비야였고, 당신 자신이 천민 성자 마탕가였음을 밝히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