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와닷따가 코끼리를 이용하려 한 음모를 둘러싼 틀 이야기
팔리 경전의 제329번 자타카는, 데와닷따(부처님의 질투심 많은 사촌이자 경쟁자)가 날라기리 코끼리를 시켜 자신을 짓밟아 죽이게 하려던 계략에 관하여 부처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그 계략이 실패한 일은, 결국 그 오만한 짐승 자신 말고는 아무도 파멸시키지 못한 옛 오만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억제되지 않은 교만은 언젠가 제 몫의 환대를 스스로 다 써 버린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부처님께서는 궁정에서 잠시 두 앵무새를 가려 버린 원숭이와 두 앵무새의 이야기를 떠올리셨습니다.
황금 새장 속의 두 앵무새
그 전생에서 보살은 라다라는 이름의 앵무새로 태어났고, 예리한 지혜와 세련된 말솜씨를 타고났습니다. 그의 어린 동생 포타파다는 같은 새장을 나누어 썼습니다. 새잡이가 두 마리를 어린 깃털일 때 사로잡아 바라나시의 다나자야 왕에게 바쳤기 때문입니다. 왕은 두 마리의 아름다움과 또렷한 말에 기뻐하여 황금 새장에 두었고, 사탕수수와 꿀을 바른 볶은 옥수수와 달콤한 우유를 골라 먹였습니다. 왕궁의 사람들도 두 마리를 가장 높이 여겼습니다.
궁정의 관심을 빼앗은 원숭이
얼마 뒤, 한 산림 관리인이 검은 팔이라는 뜻의 깔라바후라는 이름의 크고 장난기 많은 원숭이를 선물로 궁정에 데려왔습니다. 그 짐승의 날렵한 흉내와 굴리는 눈동자, 서까래를 타고 뒤구르는 익살은, 왕자들과 신하들을 앵무새들에게는 한 번도 준 적 없는 웃음 속에 빠뜨렸습니다. 이 새로운 즐거움에 홀린 궁정은 달콤한 과일과 간식을 원숭이에게 쏟아부었고, 시종들은 황금 새장을 소홀히 하여, 두 앵무새에게는 맹물과 마른 곡식만이 남았습니다.
궁을 떠나고 싶었던 동생
포타파다는 이 갑작스러운 운명의 뒤바뀜에 씁쓸해졌습니다. 그는 형에게, 한때 자신들의 것이던 모든 존경이 이제는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장난이나 치는 거칠고 우악스러운 짐승에게 돌아갔다고 탄식했습니다. 지혜로운 말만 하는 자신들은 마른 곡식과 함께 잊혀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라다에게, 이 모욕을 더 견디기보다 함께 날아올라 깊은 숲으로 돌아가는 것이 남은 유일한 품위라고 재촉했습니다.
같은 양상을 이미 본 형
라다는 같은 씁쓸함으로 맞서지 않고 차분한 확신으로 동생에게 답했습니다. 명예와 불명예, 얻음과 잃음은 그림자처럼 모든 생명 위를 지나가며 누구에게도 오래 머물지 않으니, 평범한 운명의 흥망에 흔들리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참된 덕이 없는 거친 존재는 생각이 깊은 이들의 호의를 결코 오래 붙잡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깔라바후의 불안한 오만은, 두 사람이 깃털 하나 들어 올리지 않아도 머지않아 그 자신을 몰락으로 이끌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상보다 빨리 보상받은 인내
라다의 확신은 옳다는 것이 증명되기까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궁정의 끝없는 웃음과 간식에 한껏 부푼 깔라바후는 날마다 점점 대담해졌습니다. 어느 오후, 왕의 어린 자녀들이 누각으로 들어서자, 원숭이는 이를 드러내고 소리를 지르며 어린 왕자에게 달려들어, 겁에 질린 아이들 앞에서 그의 고운 비단 외투를 찢어 버렸습니다.
원숭이가 스스로 불러온 몰락
자신의 자식들에게 가해진 짐승의 폭력에 분노한 왕은, 경비병에게 깔라바후를 때리고 왕궁 담 밖 도성의 쓰레기 더미에 내던지라고 명했습니다. 라다가 조용히 예견한 바로 그대로였습니다. 원숭이가 사라지자 왕은 잠시 소홀히 했던 두 앵무새의 한결같은 가치를 마침내 알아보았고,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은 존중으로 예전의 명예를 되돌려 주었습니다.
라다가 관심을 다툴 필요가 없었던 까닭
이 일화 내내 라다가 보인 평정은, 동생이 잠시 놓쳤던 한 가지 구별에 기대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놀이에 대한 궁정의 덧없는 기쁨은, 참으로 믿을 만한 가치를 지녀서 얻은 명예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라는 구별입니다. 영리한 재주는 새롭기만 한 동안만 눈길을 끕니다. 한결같은 성품은, 어떤 경쟁자의 새로움이 닳아 없어진 뒤에도 오래도록 귀하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라다는 깔라바후와 같은 얄팍한 박수를 두고 다툴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전생의 인연을 밝히시다
이야기의 끝에 부처님께서는 포타파다를 아난다(부처님의 상수 제자 가운데 한 사람)로, 깔라바후를 데와닷따로 밝히셨습니다. 한때 원숭이가 궁정에서의 자리를 잃게 만든 그 불안한 오만은, 수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도 데와닷따를, 부처님을 향한 제어되지 않은 야심이 결국 그 자신에게 가져올 파멸로 몰아가고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칼라바후 본생경은 찰나의 천박한 인기와 변함없이 빛나는 내면적 덕행을 극명하게 대조한다.
궁정 대접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세상의 여덟 가지 풍파(세간팔법
득실, 칭훼 등)의 덧없음을 보여준다.
인욕(khanti)은 무절제한 방자함이 스스로 파멸로 치닫는 과정을 흔들림 없이 지켜보게 한다.
아우 앵무새는 부당한 대우에 격분하는 범부의 마음을, 보살은 혜안으로 앞날을 내다보는 평정을 상징한다.
참된 품격은 가벼운 잔재주가 아니라 깊은 절제와 지혜로운 처신에서 비롯된다.
Buddha
More from बौद्ध धर्म
연결된 가르침
같은 가르침이 여러 전통 속에서 울려 퍼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