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arat Devotion
Embroidered artwork for 유반자야 자타카: 아침 이슬 속의 무상: Embroidered Buddha seated in meditation on a pink lotus, with a golden dharma wheel and a white stupa in the mountains

유반자야 자타카

아침 이슬 속의 무상

왕자는 아침 이슬이 저녁에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그 이슬 속에서 자신의 생을 너무도 분명히 보게 됩니다. 그는 바로 그날 천 명의 형제가 함께 누리던 왕국을 버립니다.

부처님께서 처음이 아니라 하신 출가

기원정사에서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왕국을 버리고 떠나신 위대한 출가에 대해 감탄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좌를 떠나 걸어 나온 일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고 말씀하시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주 오래된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천 명의 아들 가운데 맏이

그 옛날 까시 왕국 람마 성을 다스리던 사바닷따왕은, 천 명의 아들 가운데 맏이인 유반자야를 부왕으로 세우고, 그 직위에 따르는 모든 왕실의 특권을 내려 주었습니다. 유반자야는 아버지의 광대한 궁정이 베풀 수 있는 온갖 안락 속에서 자라났고, 수많은 형제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새벽에 진주처럼 빛나던 이슬

어느 날 아침, 유반자야는 말을 타고 유원지로 나갔다가, 풀잎과 나뭇잎과 거미줄에 맺힌 이슬방울들이 이른 햇빛 속에서 흩뿌린 진주처럼 반짝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나가는 길에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였지만, 그날 저녁 돌아와 보니 떠오른 해의 열기 아래 모든 이슬방울이 남김없이 사라지고, 몇 시간 전 그토록 찬란하게 빛나던 것의 흔적은 전혀 남지 않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바꾼 한 생각

자신이 본 것을 곰곰이 되새기던 유반자야에게 갑작스럽고도 온전한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 부와 친족, 그리고 자신의 몸마저도 저 이슬방울과 꼭 같아서, 늙음과 병과 죽음의 같은 가차 없는 힘 아래 사라질 운명이며, 무엇이든 조건 지어진 것은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처럼 완전히 흩어질 것이 분명한 쾌락에 어찌 계속 매여 있어야 하는가?

머물러 달라고 애원한 부모

유반자야는 곧장 아버지에게 가서, 왕국을 완전히 내려놓고 히말라야에서 출가 수행의 삶을 살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왕과 왕비는 모두 울며 그가 남아 주기를 간청했습니다. 그가 머물기만 한다면 절대적인 통치권과 견줄 데 없는 부, 그리고 왕국이 줄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유반자야는 부드럽게 답하였습니다. 왕권과 왕실의 영화 역시 그가 바라본 이슬처럼 덧없는 그림자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뒤처지지 않으려 한 막내 동생

천 명의 왕자 가운데 막내인 유디티틸라는 형의 결의를 보고, 부모에게 세속을 떠날 같은 허락을 청하였습니다. 어느 아들도 설득으로 붙잡을 수 없음을 본 왕과 왕비는 마침내 승낙하였고, 온 궁정은 두 형제가 떠나는 모습을 그들이 내려놓은 것에 대한 깊은 경외심으로 지켜보았습니다.

부처님의 전생 동일시

유반자야와 유디티틸라는 함께 고요한 히말라야로 들어가, 수행자의 가사를 입고, 사무량심(자애, 연민, 함께 기뻐함, 평정)을 닦아 깊은 선정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그 평화 속에서 생을 보내다가 선정으로 이르는 높은 하늘인 범천계에 태어났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르침을 맺으시며, 그 생의 유반자야가 바로 자신이었고, 유디티틸라는 아난다였으며, 그 시대에 슬퍼했던 왕과 왕비는 이 생에서 자신의 왕족 가문의 일원이었다고 밝히셨습니다. 팔리 성전 『본생경』 제460화가 이 이야기를 이 형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논쟁할 수 없을 만큼 작은 것 속에서 본 진리

이슬 자체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에 본래 알맞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밤사이 모여 아침이면 사라지는, 언제나 그래 왔던 물일 뿐입니다. 그것이 유반자야에게 그토록 효과적인 스승이 된 까닭은 바로 그 작음과 완전한 예측 가능성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라짐은 더 큰 상실들이 자주 그렇듯 부정하거나, 따지거나, 둘러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증인이 없어도 지탱된 결의

유반자야는 떠나기 전에 동생의 지지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통찰의 힘으로 이미 선택을 마쳤고, 유디티틸라가 뒤따르기로 한 결정은 그 뒤에 나왔으며, 논쟁에 설득되어서가 아니라 목격함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두 번째 출가가 첫 번째를 그저 바라보는 데서 자연스럽게 자라났다는 사실은, 참된 확신이란 일단 드러나면 굳이 옹호하지 않아도 저절로 번져 간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천 명의 형제 가운데 떠난 둘

이 이야기는 사바닷따왕의 나머지 구백구십팔 명의 아들들이 더 못났거나 같은 통찰을 얻을 능력이 부족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슬이 그날 아침 우연히 유반자야의 눈앞에 떨어졌고, 그 뒤 그의 동생이 우연히 가까이 있어 그 일이 그에게 무엇을 가져왔는지 목격하였을 뿐입니다. 이 이야기는 왜 그토록 많은 이가 남았는지 묻지 않으며, 상황과 확신이 함께 맞아떨어진 두 사람에게 무엇이 가능해졌는지만 보여 줍니다.

알고 계셨나요?

아침 이슬(우싸와빈두)의 비유는 무상(아닛짜)을 가리키는, 경전 속 가장 유명한 불교 상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유반자야 왕자는 세속의 사치가 정점에 이른 순간 왕족의 자리를 떠나, 보살의 출리 바라밀(넥캄마 바라밀)을 구현합니다.

그의 동생 유디티틸라 왕자는 순전히 영적 감화와 형제에 대한 헌신으로 형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왕과 유반자야 사이의 대화에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노래한 깊은 게송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참된 깨달음이 단순한 자연 현상을 가까이 마음 챙겨 바라보는 데서 촉발될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