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arat Devotion
Embroidered artwork for 아잔냐 자타카: 화살을 맞고도 전차의 멍에를 지킨 두 명마의 인내: Embroidered Buddha seated in meditation on a pink lotus, with a golden dharma wheel and a white stupa in the mountains

아잔냐 자타카

화살을 맞고도 전차의 멍에를 지킨 두 명마의 인내

일곱 왕의 포위를 뚫는 싸움에서 상처를 입고도, 두 형제 명마 중 형은 교체를 거부하고 전투를 끝까지 마친 뒤 왕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포기해 버린 수행승

부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팔리 경전에 기록된 에까니파타의 제24 자타카로서 기원정사에서 설하셨습니다. 수행에 낙담하여 정진을 그만두어 버린 한 비구를 격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모인 비구들에게 부처님께서는 지난 세상에도 지혜롭고 선한 이들은 상처를 입고서도 정진을 이어 갔다고 말씀하시며, 그 정진이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보여 주고자 전생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신드에서 온 두 형제

바라나시 왕국, 브라흐마닷타 왕의 치세에 일곱 적대 왕이 힘을 합쳐 수도를 거대한 포위망으로 에워쌌습니다. 왕의 최고 장수는 전차에, 가장 고귀한 혈통을 지닌 신드 지방의 한 쌍의 명마, 최상급 아잔냐 순혈마를 멍에 메웠습니다. 두 말은 형제였고, 형이 바로 보살이었습니다. 두 말은 함께 성문을 박차고 나가 적진을 가로질러 전차를 끌었고, 연이어 여섯 개의 진영을 무너뜨려 포위한 일곱 왕 가운데 여섯 왕을 사로잡았습니다.

상처를 입었으나 교체되지 않다

전차가 일곱 번째 왕의 진영을 향해 돌격해 들어가던 때, 형인 말, 곧 보살이 화살을 맞아 중상을 입었습니다. 선도마가 다친 것을 본 마부는 왕의 문으로 전차를 되돌렸습니다. 그곳에서 마부는 상처 입은 보살의 멍에를 풀고, 옆으로 눕힌 뒤, 새 말을 끌어와 싸움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갑주를 벗기기 시작했습니다.

순혈마의 게송

마부의 뜻을 알아챈 보살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몸을 일으켜 게송 하나를 읊었습니다. 대신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시작한 일은 자신이 끝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시간이 언제이든, 승리의 때이든 고난의 때이든, 순혈의 준마는 싸움을 계속하지만 열등한 말은 굴복한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마부에게 갑주를 다시 입히고 마지막 진영을 향해 다시 한번 몰라고 청했으며, 검증되지 않은 짐승에게 결과를 맡기지 말라고 촉구했습니다.

일곱 번째 왕이 쓰러지다

보살의 결의에 감동한 마부는 그를 다시 멍에에 메웠습니다. 상처를 넘어선 힘을 끌어 쓴 부상당한 말은, 마지막 방어선을 뚫고 전차를 끌어가, 일곱 번째 왕을 사로잡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여섯 개의 무너진 진영만으로는 확보할 수 없었던 완전한 승리를 마침내 이룬 것입니다. 이 자타카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미 힘이 다하여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그러한 힘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고귀한 혈통의 말뿐이었습니다. 평범한 짐승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쓰러졌을 것입니다.

마지막 조언과 왕실의 장례

승리를 안고 궁궐로 돌아온 보살은, 중상을 입은 채로, 힘이 완전히 다하기 전에 왕에게 조언을 남겼고, 끝내 상처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왕은 이 말이 나라를 위해 바친 봉사의 참된 무게를 알아보았습니다. 짐을 나르는 짐승에게 흔히 주어지는 평범한 최후 대신, 왕은 영웅에게 걸맞은 예를 갖춘 화장으로 말을 기렸으며, 승리에 기여한 마부에게도 넉넉한 상을 내렸습니다.

부처님의 전생 밝힘

가르침을 마무리하며 부처님께서는 두 생에 걸친 등장인물을 밝히셨습니다. 장로 아난다는 그 전생의 왕이었고, 부처님 자신은 그 전쟁마였다고 하셨습니다. 낙담한 비구를 위해 끌어낸 교훈은 단순하고 꾸밈이 없었습니다. 이미 상처를 입고, 이미 지쳐 있는 존재도, 의무와 탁월함이 요구하는 바를 다른 이에게 넘기지 않고 끝까지 마치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온전할 때가 아니라 아픔 속에서 이루어지는 바로 그 선택에서, 참된 정진, 비리야가 입증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왜 상처 입은 말인가, 새 말이 아니라

이 자타카의 구조는 마부가 결코 내릴 수 없었던 선택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그의 계획은 어떤 평범한 기준으로 보아도 합리적이었습니다. 상처 입은 영웅을 쉬게 하고, 가장 어렵고 마지막 싸움에 검증되지 않은 대체마를 내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의 모든 힘은 보살이 바로 그 합리적인 계획을 거부한 데 달려 있습니다. 대신 그는 상처가 있더라도 이미 그 일을 해낼 능력을 증명한 이가 일을 마쳐야 한다고 고집했고, 그 기개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짐승에게 맡겨지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게송은 단순한 의지가 아니라 혈통을 기준으로 차이를 그립니다. 평범한 말은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여섯 개의 무너진 진영에 의해 시험받은 적이 없었으므로, 같은 순혈의 자질을 지녔다고 알 수 없었습니다. 반면 상처 입은 보살의 능력은, 줄어들었지만 의심할 여지 없이 입증되어 있었습니다.

대가로 헤아린 정진

이야기는 승리만으로 끝나지 않고 보살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불교 주석서는 이 세부를 정진, 즉 바른 노력에 관한 가르침에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으로 봅니다. 만일 상처 입은 말이 싸움을 마친 뒤 흠집 하나 없이 살아남았다면, 교훈은 그저 노력은 보상받는다는 것뿐이었을 것입니다. 쉬기를 택하지 않은 그 상처로 그가 죽게 함으로써, 본생담은 진정한 정진은 대가가 실재하고 결과가 불확실한 자리에서 시험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왕이 말을 화장한 것은, 보통 짐승이 아니라 사람에게 주어지는 영예인데, 이 노력이 생명이 치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값으로 치러졌음을 이야기 안에서 인정하는 표지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팔리 경전 소부 본생경의 에까니파타 제24화로, 기원정사에서 설해졌으며 수행에 낙담하여 정진을 놓아버린 비구를 격려하였습니다.

두 전마는 신드 지방 아잔냐 명마의 혈통을 이어받은 형제이며, 상처를 입은 형 말이 곧 보살이었습니다.

보살의 게송은 승리와 역경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순혈 명마와, 굴복해 버리는 열등한 말을 대조합니다.

중상을 입고도 보살은 포위한 일곱 번째 왕을 사로잡는 데 힘을 보탠 뒤, 왕에게 조언을 남기고 상처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왕은 말을 정중히 화장하여 기렸으며, 부처님은 전생의 왕이 아난다였고 전쟁마가 바로 자신이었다고 밝히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