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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roidered artwork for 말루타 자타카: 추위의 근원을 다툰 사자와 호랑이의 문답: Embroidered Buddha seated in meditation on a pink lotus, with a golden dharma wheel and a white stupa in the mountains

말루타 자타카

추위의 근원을 다툰 사자와 호랑이의 문답

두 노년 비구가 달의 어느 시기에 추위가 찾아오는지를 두고 다투자, 부처님은 과거 생에 사자와 호랑이였을 때 그들을 위해 같은 다툼을 이미 해결해 주셨던 일을 떠올리셨다.

밝음과 어둠이라 불린 두 장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이야기는 팔리 경장의 본생담 제17화로, 출가가 늦은 두 노년 비구에 관한 것입니다. 승가에서는 이들을 어둠 장로와 밝음 장로라 불렀습니다. 두 사람은 겨울 추위가 실제로 언제 찾아오는지를 두고 끝없이 다투었습니다. 어둠 장로는 달이 기우는 어두운 하현의 시기에 추위가 온다고 주장했고, 밝음 장로는 달이 차오르는 밝은 상현의 시기에 온다고 똑같이 굳게 주장했습니다. 둘이서 해결하지 못하자 부처님께 가져갔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물음에 대해 그들을 위해 답해 주신 것이 처음이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그 방법을 보여 주기 위해 전생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떨어질 수 없는 사자와 호랑이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보살은 깊은 지혜를 지닌 수행자로서 고요한 암자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그 가까운 바위 틈의 동굴에는 사자와 호랑이 두 친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본성은 맹수였지만 음식과 거처를 진심 어린 정으로 나누어, 적수라기보다 형제에 가까웠습니다.

추위를 둘러싼 다툼

혹독한 겨울밤, 서리가 바위 위에 내려앉던 때 두 친구는 다툼에 빠졌습니다. 호랑이는 추위가 달이 기울고 하늘이 검게 변하는 어두운 하현의 시기에 세상에 내려온다고 선언했습니다. 사자는 똑같은 확신으로 가장 혹독한 추위는 달이 가득 빛나는 밝은 상현의 시기에 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았고, 논쟁은 두 사람의 오랜 우정을 위협할 만큼 날카로워졌습니다.

양쪽 주장을 모두 가라앉힌 게송

논쟁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기에 두 맹수는 다툼을 수행자의 암자로 가져가, 그 앞에 엎드려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펼쳐 보였습니다. 보살은 그 후로 거듭 되풀이되어 온 게송으로 답하셨습니다. “달의 밝은 반이든 어두운 반이든, 바람이 불 때마다 추워지나니. 추위는 바람에서 생기는 것이니, 두 사람 모두 달을 탓한 것은 잘못이다.” 이 말을 들은 사자와 호랑이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신들을 거의 갈라놓을 뻔했던 일의 사소함에 함께 웃으며, 회복된 정을 안고 동굴로 돌아갔습니다.

부처님이 밝히신 전생의 인연

가르침을 맺으시며 부처님께서는 두 생에 걸친 등장인물들을 밝히셨습니다. 어둠 장로는 어두운 하현을 탓했던 호랑이였고, 밝음 장로는 밝은 상현을 탓했던 사자였으며, 부처님 자신은 이미 한 번 그들의 바로 그 물음에 답했던 수행자였습니다. 그 모습은 두 사람이 지금은 기억할 수 없는 형태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두 노년 비구는 되풀이되어 온 자신들의 다툼의 본질에 대해 통찰을 얻고, 마침내 그것을 놓아 버렸다고 전해집니다.

한 생을 넘어 이어진 다툼

이 본생담이 특별한 까닭은 추위의 참된 원인에 관한 바로잡음만이 아닙니다. 그 이야기 틀 속에 담긴 함의에 있습니다. 같은 두 마음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긴 세월을 지나, 처음에는 짐승으로, 다음에는 인간으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같은 의견 차이를 거의 그대로 지니고 있었고, 각자는 여전히 상대가 분명한 진리를 놓쳤다고 확신했습니다. 불교 주석은 이 지속성을, 하나의 고정된 견해가 마음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려 종의 변화와 세월의 흐름마저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계로 읽습니다. 오직 명쾌한 답을 인내하며 두 번째로 건넬 때에만, 논쟁만으로는 어느 생에서도 가라앉지 않았던 것이 마침내 풀릴 수 있었습니다.

양쪽이 모두 절반만 옳았던 이유

수행자의 게송이 돋보이는 까닭은 어느 한쪽만 옳고 다른 쪽은 그르다고 단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자와 호랑이는 둘 다 실제로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각자 선호하는 반달 동안 추위가 확실히 찾아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둘 다 그 원인을 잘못 짚어, 달빛과 자주 겹치는 현상을 실제 원인으로 오인했습니다. 이 본생담은 이것을 분쟁을 푸는 모범으로 제시합니다. 한쪽의 경험을 다른 쪽의 경험보다 옳다고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두 편이 실제로 목격한 바를 설명해 주는 간과된 요인을 찾아냄으로써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고정된 입장 사이의 경쟁으로만 짜인 논쟁은 이런 해결을 거의 허용하지 않습니다. 사자와 호랑이가, 그리고 수백 년 뒤의 두 노년 비구가 스스로는 결말을 짓지 못한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입니다. 두 쌍 모두 한쪽 편을 고르기보다 추위의 실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묻기 꺼리지 않는 제삼의 목소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팔리 성전의 본생담 제17화로, 어둠 장로와 밝음 장로라 불린 두 노년 비구가 겨울 추위가 달의 어느 시기에 실제로 찾아오는지를 두고 다투는 이야기입니다.

전생 이야기에서는 히말라야 동굴에 살던 가까운 벗인 사자와 호랑이가 어두운 반달과 밝은 반달을 두고 똑같은 다툼에 빠집니다.

보살 수행자는 오늘날까지도 인용되는 게송으로 이를 해결합니다. 달의 어느 반이든 바람이 불 때마다 추워지며, 추위를 가져오는 것은 달빛이 아니라 바람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어둠 장로를 호랑이, 밝음 장로를 사자로, 그리고 이미 한 번 그들의 다툼을 해결했던 수행자를 당신 자신으로 밝히셨습니다.

이 본생담은 두 비구가 생을 넘어 변하지 않은 의견 차이를, 고정된 견해가 마음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려 종의 변화마저 견딜 수 있는지를 경계하는 이야기로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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