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자신의 하소연
기원정사에서 부처님은 코살라의 왕에게, 자기 집안에서 왕의 신임을 저버린 한 대신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왕은 그 잘못을 알고 있었으나, 그 대신이 다른 면에서는 왕을 잘 섬겼기에 묵인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왕의 관용을 곧바로 꾸짖지 않으시고, 팔리 경전의 본생담 제225번인 칸티반나나 자타카를 들려주셨다. 그 이야기에서 인욕은 거의 같은 상황에 대하여, 왕 자신이 배울 수 있는 지혜로 답을 주었다.
같은 잘못, 두 번의 되풀이
아주 오랜 옛날, 브라흐마다타 왕이 바라나시를 다스리던 때, 그의 궁정에 있던 한 대신이 왕실 안에서 왕의 신뢰를 저버렸다. 그 방식은 훗날 코살라의 대신이 저지르게 될 것과 꼭 같았다. 이 대신이 알지 못했거나, 잊기로 선택한 사실은, 자기 집에서 자신의 하인이 바로 그와 똑같은 짓을 자기에게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주인이 다른 곳에서 일에 얽매여 있는 동안, 하인은 대신 자신의 아내와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분노로 올린 하소연
이 치욕을 견딜 수 없었던 대신은 판결을 요구하며 하인을 브라흐마다타 왕 앞으로 끌고 나갔다. 그는 정해진 운문의 형식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펼쳐 보였다. 집안일을 맡기려고 한 사람을 두었는데, 바로 그 사람이 하인이 주인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중대한 방식으로 자신을 해쳤다는 것이었다.
왕의 온화한 대답
브라흐마다타 왕은 대신이 분명히 기대하던 분노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도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고 하였고, 완전한 충성을 지닌 흠 없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다고 하였으며, 자신으로서는 이토록 흔한 인간의 약점을 마주했을 때 벌보다 인내를 택한다고 말하였다. 왕의 말씀은 그런 요점을 가장 부드럽게 전할 수 있는 만큼 온화하게, 대신 자신이 궁궐에서 보인 행실을 곧바로 가리켰으나, 끝내 그것을 밝혀 이름 붙이지는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챈 부끄러움
대신은 왕이 방금 무엇을 말했는지, 그리고 왜 그 특별한 방식으로 말했는지를 정확히 알아들었다. 왕 자신의 너그러움 속에서 그는, 이제 자신이 하인에게 베풀도록 요구받고 있는 자비의 거울을 보았다. 대신과 하인은 둘 다, 더 가혹한 벌이 아니라 이 조용한 질책에 의하여 뉘우치게 되었고, 애초에 그들을 왕 앞으로 이끌었던 행실을 그만두었다.
부처님의 자기 밝힘
부처님은 코살라의 왕에게, 그 먼 전생에서 자신이 바로 바라나시의 지혜로운 왕이었다고 말씀하시며 설법을 마치셨다. 그 왕은 위선에 벌이 아니라 인욕으로 답하였다. 부처님은 대신이 자기 잘못을 소리 내어 듣도록 강요받지 않고도, 그 잘못이 자신에게 비추어져 보이게 하셨다. 그 가르침은 코살라의 왕에게 곧바로 닿았다. 한때 대신을 치욕이 아니라 깨달음을 통해 고쳐 세웠던 바로 그 인욕이, 이제 그에게도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상황이 옛일과 충분히 가까워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벌이 이루지 못했을 것을 인욕이 이룬 이유
이 본생담의 더 깊은 뜻은 대신의 하소연이 가진 특별한 모습 위에 놓여 있다. 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 저지른 그 잘못에 대하여 엄한 정의를 요구했다. 그는 자신의 위선을 똑바로 바라보도록 한 번도 요구받지 않았기에 그것을 보지 못하도록 보호받고 있었다. 분노로 내려진 벌은 대신의 정의에 대한 요구를 만족시켰을지 모르나, 더 깊은 문제는 결코 건드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인을 벌한다고 해서 대신 자신의 행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반면 왕의 인욕은 대신의 요구를 넘어서, 그 밑에 놓인 위선에까지 닿았다. 그것은 한마디 고요한 말로, 더 가혹한 판결로는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일을 이루었다. 위선에 분노로 답하면 더욱 성난 위선자만 만들어지지만, 위선에 인욕으로 답하면 때로는 마침내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남을 심판하기 전에 자신을 심판한 왕
왕의 대답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자신의 기준을 적용한 순서이다. 그는 먼저 하인을 벌하고 나서, 어쩌면 나중에 혼자서 자기 행실을 되돌아보는 식이 아니었다. 대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적용하라고 요구한 바로 그 기준으로 자기 집안을 먼저 재어 본 뒤에야 하소연에 답하고 말을 꺼냈다. 이 순서는 결과에 매우 중요하였다. 자기 집을 먼저 심판하는 왕만이 남에 대해 말할 자격을 얻는다. 반면 남을 먼저 심판하고 자신은 결코 심판하지 않는 왕은, 위선이 분명해졌을 때 침묵 속의 원망만을 얻게 된다.
정직함의 한 가지 형태로서의 인욕
칸티, 곧 인욕은 흔히 주로 자제로 설명된다. 곧 충분히 정당할 수도 있는 분노의 반응을 그저 참아 내는 것이다. 이 본생담은 그 정의에 한 가지를 더한다. 왕의 인욕은 또한 정직함의 한 형태이기도 했다. 자기 역시 같은 잘못을 숨긴 채 하인을 가혹하게 벌했다면, 왕은 실제로는 지니고 있지 않은 도덕적 위치를 가장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왕의 온화한 응답은 권위를 조금도 잃게 하지 않았고, 벌로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것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왕의 자비가 범할 수 없는 우월함의 자리가 아니라, 함께 잘못할 수 있는 존재라는 바탕에서 나온다는, 대신의 진정한 깨달음이었다.
알고 계셨나요?
팔리 경전 제2집(두카니파타) 카사와 품에 실린 정전 자타카 제225번.
재판에서의 칸티(인욕)와 군주의 격노(코다)가 초래하는 치명적 해악을 다룬 근본 불교 교설.
보살은 바라나시의 지혜로운 왕으로 나타나, 한 신하의 위선에 조용한 인내로 맞섰다. 그리하여 그 신하는 자신의 하인이 저지른 배신 속에서 자기 잘못이 비치는 것을 보게 되었으나, 왕은 이를 결코 입 밖에 내어 말하지 않았다.
칸티(인욕) 바라밀과 반냐(지혜) 바라밀을 통치와 국사에서 구현한 모범.
